1인 창조기업 철우엔지니어링의 창조경제 스토리
1인 창조기업 철우엔지니어링의 창조경제 스토리
  • 이경호(lkh@koreaittimes.com)
  • 승인 2015.05.13 18: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철우엔지니어링 천형규 대표

[편집자주] Korea IT Times는 올해 광복 70주년을 기념하여 잔혹했던 일제치하와 한국전쟁을 겪어내고 오직 돈을 벌기 위해 베트남 전쟁 참전, 독일 광부로 파견, 브루나이, 이란, 리비아, 말레이시아를 종횡무진 드나들며 세계의 산업현장 속에 일생을 바친 피와 땀이 어린 경제 주역들의 이야기를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살면서 후회한 적이 있습니까" "아니오, 전혀 없습니다." 기자의 질문에 천형규 대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1인 창조기업으로 방폭형계기용변압기 독점 계약을 따낸 천형규 대표는 어릴적부터 전차(City Tram)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초등학교 다닐 때 매일 무임승차(Ticketless Passenger)였지만 타고 다니던 전차가 있는데 항상 전차를 타면 기관사를 유심히 살펴보곤 했다. 그러던 중 전차의 제조회사를 보게 되었는데 전부 다 일본제품이었고, 그 당시 어린 나이에 든 생각이 왜 우리나라는 이런 전차를 만들지 못할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른들에게 왜 우리나라는 이런 전차를 만들지 못하느냐고 물어봐도 대답을 해주는 사람들이 없었다. 당연히 일본제품이니 쓰는 것이고 우리가 저런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전차가 먼 훗날 내 직업과 관련된 연결고리가 됐고, 철우란 이름도 그 당시 살던 곳에 철우회라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철도기관사들의 퇴직모임이었다. 그래서 난 철도를 사랑하는 사람이니 철우로 하자고 생각 해 철우엔지니어링을 만들게 됐고, '1인 기업 창조경제'를 목표로 실천해왔다"고 말했다.

Korea IT Times는 이번호에 6.25전쟁 직후 어려웠던 대한민국의 경제 속에서 자신만의 소신과 아이디어로 몸소 창조경제를 실천해 온 '1인 창조기업 철우엔지니어링 천형규 대표'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80년대는 산업화의 붐이 일어날 시기인데 그 당시에는 어떤 일을 하셨는지

"81년도에 조그만 무역회사에 다니던 중 북아메리카 리비아로 해외 세일즈 출장을 가게 됐다. 그때는 한국제품을 팔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바이어들이 무엇을 살지 몰라 샘플제품 100개를 들고 첫 시장에 부딪혔다. 하지만 세일즈가 쉽지 않았지만, 노력 끝에 세일즈에 성공, 대기업들도 잘하지 못한 300만 불의 성과를 올렸다. 코트라에서 신 시장 개척의 주역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첫 세일즈를 통해 성취감을 맛보셨을 것 같다. 계속 그 일을 이어나가셨는지

"첫 회사 이후 세일즈맨이 적성에 맞아 두 번째로 코오롱상사에 취직했다. 한번은 이동찬 회장이 88서울올림픽을 앞둔 1월 시무식 때 코오롱스포츠의 브랜드를 이번 올림픽에서 세계에 알려야 하는데 아직 초안조차 보고를 받아보지 못했다는 말씀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당시 내 직급이 대리였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이런 중대한 올림픽 때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올림픽 후원권을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어떻게 자료를 만들어야 할지 막막했다. 원조만 받았던 나라에서 무엇을 후원하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책을 찾아봤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아마 이때부터 나만의 창조경제가 시작됐던 것 같다. 시나리오의 초안을 혼자만의 노력으로 작성하고 종합계획을 만든 후 외국의 선수단에 우리 유니폼을 입히는 것부터 시작해서 방송에 노출되는 여러 가지 플랜을 완성해 제출했고 그 결과는 훌륭했다. 비록 국내 선수단들의 50% 정도만 우리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지만 8개국 세계 일주를 하면서 사무총장을 만나 계약을 성사시켰고, 계약한 8개국의 외국 선수단은 모두 우리의 유니폼을 착용했다."

"그 이후 개발사업부로 발령받아 90년도에 조달청을 찾아갔다. 예산배정으로 외자구매 받은 것이 국회 예산으로 10억 달러밖에 되지 않았다. 그중에 7억5천만 달러가 철도예산이었다. 어려서부터 전차를 좋아했던 기억 때문에 레일로드 비즈니스로 방향을 정했다."

"서울시 5호선 지하 변전설비(Seoul subway line5 substation facilities)로는 국가 예산이 5천2백만 달러가 책정됐다. 국내 회사는 실적이 없어서 들어오지 못했고 전부 해외에서 다 사업권을 따갔다. 그래서 내가 이 사업을 주목해 뛰어들어 독학으로 배워 1년 만에 계약을 따고 1799만 불을 성사시켰다. 나머지 금액 3400만 달러의 예산을 절감시켜 그 예산으로 광주 지하철과 대전 지하철 2개를 개통해 표창도 받았다."

광복 70년의 변화와 향후 70년의 비전을 제시한다면

"가치관의 변화가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 돈의 가치가 예전에는 서로 비교의 대상이 아니었지만 지금 돈의 의미는 많이 변절했고 비교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남들과 비교하는 가치관들이 젊은 정신을 갈아먹고,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창조경제에서 원하는 창의력을 잃어가는 것 같아 그 점이 아주 아쉽다."

"앞으로 나의 포부는 해외시장 세일즈를 오랫동안 해오면서 전차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철도사업을 하면서 독일 리츠 회사의 방폭형 계기용 변압기(Burst proof potential transformer)를 17년 동안 거래를 유지하고 제품을 팔아준 경험을 토대로 이번에 국내 독점 판매권을 받았다. 향후 70년의 비전은 기업형 창조경제가 아닌 ‘개인사업자형 1인 창조경제’를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대한민국 철도산업 발전의 일익을 담당하는것이 목표이다."

by 이경호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ABOUT
  • CONTACT US
  • SIGN UP MEMBERSHIP
  • RSS
  • 2-D 678, National Assembly-daero, 36-gil, Yeongdeungpo-gu, Seoul, Korea (Postal code: 07257)
  • URL: www.koreaittimes.com | Editorial Div: 82-2-578- 0434 / 82-10-2442-9446 | North America Dept: 070-7008-0005 | Email: info@koreaittimes.com
  • Publisher and Editor in Chief: Monica Younsoo Chung | Chief Editorial Writer: Hyoung Joong Kim | Editor: Yeon Jin Jung
  • Juvenile Protection Manager: Choul Woong Yeon
  • Masthead: Korea IT Times. Copyright(C) Korea IT Times,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