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동상 건립 Full Story] 정연태 집행위원장 인터뷰
[안중근 동상 건립 Full Story] 정연태 집행위원장 인터뷰
  • By 이주희 기자 (info@koreaittimes.com)
  • 승인 2015.12.02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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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1일 국회헌정기념관에서 정연태 위원장(오른쪽에서 세 번째)과 내외 귀빈들이 동상 제막식을 갖고 있다.

지난달 11일 민의(民意)를 대표하는 대한민국국회 헌정기념관에 일본 제국주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동상이 세워졌다.
안 의사가 서거한지 105년만의 일로, 광복 70주년을 맞아 국민들에게 그의 자주독립정신과 ‘동양평화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Korea IT Times는 ‘안중근 의사 동상건립 범국민운동본부’ 총괄집행위원장인 정연태 위원장을 만나 동상 건립과정에서의 이모저모를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정 위원장은 “안 의사가 계셨기에 한국이 정치·경제적인 번영을 누리게 됐다”며 “동상 건립에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말했다.


-범국민운동본부의 집행위원장을 맡으셨는데, 안 의사와 어떤 크고 작은 인연이라도 있나요.

“사실 개인적으로 처음부터 큰 뜻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역사라는 것이 원래 우연, 또는 사소한 일이 계기가 되는 때가 많은데 이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더군요. 지하철역에 전동차가 들어오는데 어떤 사람이 선로에 떨어졌습니다. 모든 사람이 맘 졸이며 발만 동동 구르는데, 어떤 신사가 선로로 황급히 뛰어 들어 그 사람을 구했습니다. 나중에 누군가 그 ‘의인(義人)’에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냐’고 했더니 ‘사실은 뒤에서 누가 절 떠밀었다’고 답했다는군요.(웃음)

우스갯소리 같지만 저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처음부터 안중근 의사의 동상을 건립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고, 우연한 만남이 계기가 돼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제가 미국 생활을 할 때 친분을 쌓은 한 조각가가 어느 날 저를 찾아와 안 의사의 동상을 세우고 싶다고 하더군요. 문제는, 동상 부지는 확보했는데 재원 마련이 어렵다는 겁니다. 안 의사의 자주독립사상을 기리자는 취지에는 공감을 하면서도 선뜻 후원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없으니 저에게 뜻을 모아달라는 거였죠.”

 -그 분이 왜 하필이면 위원장님을 찾았나요 다른 지인들도 많았을 텐데.

“저는 저를 찾아오는 사람에게 대체로 호의적입니다.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겪는 고민과 갈등을 잘 알기 때문이죠. 누구건 아쉬운 소리 하는 거 쉽지 않잖아요. 자랑 같지만 ‘정연태’를 찾아 가면 도움을 줄 거라는 소문이 지인들에게 퍼져 있죠. 이런 기대들을 물리치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저를 믿고 찾아 주니 참 고마운 일이죠. 역사적으로 큰 업적들은 누구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사람들의 중지(衆智)와 힘을 모아 이뤄낸 것들이죠. 사람이 크게 성공할 때도 마찬가지로 그런 특별한 인연이 있다는 것을 많이 보았기에, 저는 대가 없이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돕는 일을 아주 좋아합니다.”

 -동상 건립은 선의만으로 선뜻 나설만한 간단한 일이 아니잖습니까.

“옳은 지적입니다. 사실 그 조각가의 이야기를 듣고 일주일 정도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 와중에 ‘안중근이 누구인가’ 궁금해졌고 안 의사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됐습니다. 요샛말로 깊이 파 본거죠. ‘어떻게 29세 젊은 나이에 나라를 구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것도 유복하게 태어났으면서 말입니다.

안 의사는 우리 독립운동사의 시조와 같은 분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유관순 열사, 윤봉길 의사 등 대한의 독립을 주창하던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의 뿌리가 안 의사였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이 인물에 매료됐습니다. 우리 선조 중에 이렇게 훌륭한 분이 계셨기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정치·경제적으로 자유와 번영을 누리며 살게 됐구나 하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안 의사의 젊은 기개와 우국충정이 위원장님을 이끄셨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분의 동상을 세우자는데 옆에서 도와주는 것보다 내가 직접 발 벗고 나서야겠다는 마음이 생긴 거죠. 우연한 계기가 필연이 된 셈이죠. 제가 동상 건립을 총괄 지휘해 ‘작품’을 만들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에 동상을 설립해 그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많습니다만, 쉽지 않았을 텐데요.

“큰 문제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자금, 두 번째는 위치 선정이었죠. 애초에 조각가가 생각한 부지는 육군사관학교였습니다. 엘리트 장교를 양성하는 육사도 나쁘지 않았지만 위치가 서울 공릉동이라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게 문제였죠. 학생과 시민들이 많이 찾는 국회의사당이나 광화문이 적소(適所)라고 판단했습니다.

‘안중근 의사 동상건립 범국민운동본부’를 만들고 정갑윤 국회부의장님이 총재직을 수락하셔서 제가 살림살이를 맡게 된 거죠. 제가 발이 좀 넓은 편이라 정의화 국회의장님과 국회 사무총장을 만나 설득한 끝에 허락을 받아 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안중근의사숭모회’의 안응모 이사장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작년 초에 제가 회장으로 있는 국가혁신포럼 임원들과 남산에 위치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찾았습니다.

이사장을 만나 동상 건립 취지를 설명 드리고 도와달라고 했더니 제 손을 꽉 부여잡으시면서 ‘정말 반갑고, 고맙다’라며 흔쾌히 수락하셨죠. 여든이 넘은 이사장님의 손아귀 힘이 어찌나 세던지... 안 의사 관련자료 등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으셔서 순조롭게 일을 진행 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한번 말씀 드리지만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벅찬 일이고, 역사적으로도 보람된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그분의 자주독립정신과 동양평화론을 계승 발전 시켜야 할 것입니다.”

-위치 선정부터 말씀 하셨는데, 건립 자금이 4억원정도 들었다면서요. 위원장님도 1억을 쾌척하시고...

“더 큰 문제는 동상 제작 자금이었습니다. 동상을 제작하는 데만 3억, 행사비 등 기타 부대비용까지 포함하면 4억원정도 필요했습니다. 처음에는 시민들의 소액기부로 충당하는 것이 의미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몇 만원, 기십 만원씩으로 4억을 모금하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우선 솔선수범하는 차원에서 제가 빚을 내 1억원을 기탁했습니다.

동상 건립 취지에 공감한 주변 지인들을 총동원해 많게는 수천만원에서 적게는 100만원씩 모금 할 수 있었습니다. 전직 장·차관, 은행장 등 정재계 인사들부터 예술가, 소설가, 일반시민들까지 정말 다양한 분들이 성원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국가혁신포럼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계신데, 어떤 단체며 문제의식의 출발점은 어디인가요.

“저는 젊었을 때 해외생활을 오래 했습니다. 미국에서 생활하던 1980년대는 미국이 참 잘 살았는데, 지금은 대한민국도 그에 못지않은 반열에 올랐습니다. 굶주리는 사람도 없고,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부럽지 않은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명의 이기(利器)를 가장 잘 누리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산업사회로 변모하면서 성장제일주의로 인한 압축성장의 폐해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잖아요.

예들 들어 대한민국 행복지수는 전 세계 꼴찌 수준이고, 자살률은 가장 높습니다. 출산율은 또 어떤가요. ‘대체 왜 이런 걸까’라는 의구심이 들어 국민들의 생각이 듣고 싶어졌습니다.

자비를 들여 SNS를 통해 20만명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질문은 간단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시급하게 혁신이 필요한 분야는’입니다. 다양한 답변들이 있었는데, 순서대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교육혁신, 둘째 정치혁신, 셋째 언론혁신, 넷째 안보혁신, 다섯째 권력혁신 순서로 나왔습니다. 각각에 대해 설명 드리지 않아도 독자분들 또한 공감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한 가지만 말하자면 저는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공존하는 그런 정치혁신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참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거듭나길 염원하는 많은 분들과 함께 우리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올바른 대안과 해결책을 제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따듯한 대한민국’을 모토로 국가발전에 일조하고자 시민단체로 출범한 것이 국가혁신포럼입니다. 현재 20만명 가량의 회원을 두고 있습니다. 이들과 함께 국가혁신포럼이 지향하는 5대 혁신과제를 풀어 나가고 있습니다.”

 


미래부 정보보호대상서 개인부문 공로상 수상

한편 정 위원장은 오는 9일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최하고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주관하는 '제14회 K-ICT 정보보호대상'에서 개인부문 공로상(미래부장관상)을 수상한다. 그는 현재 SNS산업진흥원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정 원장은 미국에서 1987년 소프트웨어 개발회사를 창업해 ‘성공신화’를 쓰고,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KSEA) 뉴욕지부장으로 활동하는 한편, 국제 무선통신협회 아시아지부장을 지내면서 ICT산업에 전문가로 확고한 자리매김을 했다.

1990년대에 귀국해 1993년 정부의 광케이블 초고속광대역망 구축사업에 참여, 오늘날 우리나라의 유무선 통합 초고속정보통신망이 가능케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해당부처 장관과 국장급 인사들을 만나 초고속정보통신망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등 ‘전략통’으로도 통한다.

2013년 5월 27일 정보보호산업진흥법 제정을 위한 포럼을 개최하고 같은 해 6월 미래부, 금융기관, 보안관련 업체, KISIA, KISA로 구성된 정보보호산업진흥법안 제정위원회를 조직했다.

이를 통해 정보보호산업을 진흥 및 육성하기 위한 법안을 새롭게 만들어 권은희 의원(새누리당)을 통해 발의해 지난 6월 공포되기에 이르렀다.

2014년 초에는 금융권의 개인정보 유출사건이 터져 국회 개인정보보호대책특별위원회에 민간인 전문가로서 자문위원으로 초빙돼 각 금융기관과 정부부처의 정보보안 시스템을 강화하는데 역할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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