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세도 끄떡없다”던 신격호 회장과 탄로가(嘆老歌)
“120세도 끄떡없다”던 신격호 회장과 탄로가(嘆老歌)
  • By 김인욱 기자 (info@koreaittimes.com)
  • 승인 2016.03.2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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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하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고려 때 우탁은 '탄로가(嘆老歌)'에서 늙는 서러움을 노래했다. 가는 세월이 원망스럽다. 백화점의 창틀 먼지까지 일일이 점검하고 계열사 사장을 바다 건너 일본까지 불러들여가며 사인을 받게 했던 신격호 롯데총괄회장. '황제경영'으로 이름 드높였던 '무소불위' 카리스마가 이렇게까지 참담하게 무너지리라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세월은 신 총괄회장도 빗겨 가지 않았다.

아흔을 훌쩍 넘긴 신격호 회장이 쓸쓸히 퇴장했다. 10여분만(주총)에 50년 가까이 유지했던 롯데제과와 호텔롯데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 부산롯데호텔, 롯데쇼핑, 롯데건설, 자이언츠 등 국내 다른 계열사 이사직도 내년이면 임기가 끝난다. '신격호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이다.

더욱 씁쓸한 건 자식들의 경영권 분쟁 탓에 창업주가 정신감정까지 받게 될 신세라는 거다. 지난해 12월 여동생 신정숙씨가 성견후견인 지정을 신청함에 따라 신 총괄회장은 다음달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정신감정을 받을 예정이다. '

성견후견인 제도'는 정신적 제약으로 판단능력이 부족한 사람대신 후견인을 지정해 법률행위를 대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같은 질문을 반복 하는 등 치매로 의심되는 신 총괄회장의 이상행동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건강이상설이 제기됐다.

신 총괄회장은 "50대 때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고 법원 심리에 직접 출석해 자신의 정신건강이 문제없음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으나, 여동생은 여전히 신 총괄회장의 판단능력을 의심하고 있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정신건강 검진 결과가 중요한 건, "아버지가 나를 후계자로 지목했다"는 신동주 일본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의 주장이 진실인지를 확인 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이미 세는 차남 쪽으로 기울었다. '포스트 신격호 시대'는 이미 신동빈 롯데회장이 경영권 다툼에서 우위를 선점함에 따라 한일 롯데그룹에서 '신동빈 원톱시대'로 가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아버지의 성년후견인 지정 심리 결과에 따라 광윤사 대표자리까지 빼앗길 위기다.

1922년 경남 울산에서 태어난 신격호 총괄회장은 19세에 단돈 83엔을 들고 현해탄을 건너 일본에 정착했다.

일본인 투자자의 출자로 1944년 커팅오일 제조공장을 세웠지만, 공장을 가동하기도 전에 2차 세계대전 중 미군기의 폭격을 받아 두번이나 잿더미가 됐다. 1946년 신 총괄회장은 심기일전해 히까리 특수화학연구소를 세워 비누와 포마드 등을 만들어 팔았다. 자신을 믿고 투자를 아끼지 않은 지인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였다.

당시 일본은 생필품이 귀했던 터라 제품을 만들자 마다 부리나케 팔려나갔다. 신 총괄회장은 또다시 도전했다. 1948년 주식회사 롯데를 설립해 '껌'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 그 유명한 롯데껌의 시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감명을 받은 신 총괄회장이 여주인공 이름 '샤롯데'를 따서 '롯데'라는 사명을 지은 일화는 유명하다. 현재 롯데그룹은 식품, 유통, 관광·서비스, 석유화학·건설·제조, 금융 등으로 사업 영역을 다방면으로 확장하며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됐다.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 베트남, 러시아, 인도네시아, 인도 등에도 진출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림자도 있다. 현재 두 아들의 '경영권 혈투'는 결국 신격호 총괄회장의 지나친 경영권 집착이 초래한 결과는 평가다. "회장님 100세까지 장수 하십시오"라는 인사에 "120세는 끄떡없는데 무슨 말이냐"며 진노했다는 일화는 '오너 신격호'의 경영권 집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하지만, 정작 아름답게 떠나는 방법을 그는 알지 못했다. 신동빈 롯데회장이 10여년 전 경영수업을 받고, 롯데 경영 일선에 데뷔 했을 때에도 '세대교체'라는 용어가 흘러 나왔다. 하지만 여든, 아흔을 넘긴 아버지는 해마다 제기되는 세대교체설을 부인한 채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자리를 내어준 적이 없었다. 그 사이, 아들들은 경영권 장악 욕구는 커져만 갔다.

신격호 회장이 후계자를 직접 공표했다면, 두 형제의 피튀기는 경영권 분쟁은 그나마 덜했을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막장드라마 같은 형제들의 싸움이 이른바 ‘히트’ 하면서, 롯데의 '비밀스러운 지배구조'가 알려지게 됐다. 2%도 채 안 되는 상장 계열사 지분율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거대한 그룹을 쥐락펴락하는 국내 대기업 총수에 대한 반감이 커져만 갔다.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장남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 차남 신동빈 롯데 회장 등 현재 롯데 직계 가족의 보유 지분은 1.94%에 불과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저버린 롯데일가에 큰 실망을 한 소비자들은 제품 불매운동까지 벌이고, 서로를 비방하며 할퀴는 ‘형제의 난’을 강하게 질타했다. 그로인해 롯데의 이미지는 크게 실추됐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롯데를 대기업으로 성장시켰지만, 아들들의 경영권 다툼을 차마 막지 못한 아버지, 그리고 거의 유일하게 생존한 창업 1세대 '오너' 신격호의 '얼룩진 퇴장'이 안타깝고 처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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