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조중훈의 후예들에 ‘오너십’을 묻다
한진그룹, 조중훈의 후예들에 ‘오너십’을 묻다
  • By 김인욱 기자 (info@koreaittimes.com)
  • 승인 2016.05.11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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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회장의 세 자녀

한국 대기업은 바야흐로 ‘3세 경영시대’로 진입했다. 한진그룹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가 창립 70주년.
창업주가 타계하고, 아들, 손자-손녀로 명맥을 이어가는 한진가(家)는 지금 위태롭다. 2014년 12월 대한항공 여객기에서 발생한 오너가의 횡포, 이른바 ‘땅콩회항’ 사태는 한진그룹의 위상을 땅에 떨어뜨렸다.

최근에는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신청, 해운업 구조조정 위기, 오너가 책임회피 논란과 맞물린 일련의 상황들로 곤혹스럽다. 조중훈→조양호→조현아로 대표되는 한진그룹 3대, 그리고 창업주 조중훈 회장 후예들의 ‘오너의 자격’을 되짚어 볼 시기다.

<>혼맥으로 부와 명예를 지켜온 한진그룹

1945년 고 조중훈 회장이 25세, 젊은 나이에 트럭 1대로 일군 한진그룹의 창업신화는 꽤 유명하다.
조중훈 창업 회장은 한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성격이다. 유년시절 기계를 좋아해 이것저것 뚝딱거리면서 무언가를 만들어 볼 만큼 적극적이고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동(動)과 정(靜)이 조화를 이룬 아이가 되라는 뜻에서 정석(靜石)이라는 호가 붙었다.

“길이 없으면 만들어 다니면 된다”라며 서울~인천간 한국 최초 지정좌석 버스사업을 따냈고, “행운은 남이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며 요행이 아닌 자기 신념과 노력만이 기업을 발전시키고, 위기에서 구해낸다고 믿었던 기업가였다.

근 80년 조중훈 창업회장의 뛰어난 수송외길이 지금의 한진그룹의 토대를 마련했음은 자명하다. 하지만, 정재계를 막론하고 국내 10대 그룹과 맺어온 한진가의 혼맥이 대대손손 부의 승계를 안착시키는 역할을 했음도 부인할 수 없다.

고 조중훈 회장의 장녀 조현숙 씨는 이태희 전 서울지방법원 판사와 결혼하며 법조계와 인연을 맺었다. 장남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이재철 전 교통부 차관의 장녀 이명희 씨와, 차남인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김원규 전 교육감의 차녀인 김영혜씨와 백년가약을 맺으며 정계와 인연을 돈독히 할 수 있었다.

2006년 별세한 삼남 조수호 한진해운 전 회장은 최현열 전 NK그룹 회장의 장녀인 최은영씨와 결혼하며 롯데-현대가와 인연을 맺었다. 사남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과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차녀 구명진씨의 결혼은 한진가를 LG-삼성과의 혼맥으로 묶는다.

별다른 대가 없이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사돈에 팔촌이 ‘누구’라서 부와 명예를 상속받은 재벌 2~3세는 그야말로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난 거나 다름없다.

물론 이른바 ‘빵빵한 배경’은 재벌 2∼3세에게 크나큰 이득이 될 수도 있지만, 족쇄로도 남는다. 선대의 명성을 넘어서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비교 당하며 누구의 아들, 딸 혹은 손자, 손녀로 밖에 남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한진그룹 계열사 (사진: 한진그룹 홈페이지)

<>위기 상황을 자초한 2~3세의 ‘오너십’

특히, 기업이 위기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행운을 믿지 말고 자신을 믿으라는 정석의 유지는 후대에 빛을 바랬다.
‘정석의 후예’들은 심각한 도덕적 해이로 지탄 받으며, 과연 거대 기업의 오너로서 적합한 인재인가 의문을 품게 하고 있다.

사실 정석은 자녀들의 각각 다른 기질과 학습 경험을 바탕으로 경영권을 분배하면서,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주길 바랐다.

정석은 평소 "낚싯대를 여러 개 걸쳐 놓는다고 물고기를 많이 잡는 것은 아니”라며 문어발식 확장을 경계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개척해 기반을 닦아놓은 사업에 낚싯대를 드리우면, 불필요한 경쟁을 유발하고 결국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자녀들의 경영권 승계와도 무관치 않았다. 정석은 장남에겐 항공•육상물류업을, 둘째에겐 조선•건설, 셋째에겐 해운업, 넷째에겐 금융업을 물려주며,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살아가길 바랐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삼남에게 물려준 한진해운은 탄생 39년 만에 끝내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하며 좌초 위기에 빠져있다.
조수호 전 회장이 세상을 떠난 후, 부인인 최은영씨가 회장직에 올랐으나, 한진해운은 좌초중이다.

특히 글로벌 위기 상황에도 해운업 호황기처럼 현재 시세보다 2~4배 비싼 용선료를 지불하며 선박을 대량 임대했던 판단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돌아왔다.

최 전 한진해운 회장은 2014년 시아주버니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SOS를 요청하고야 만다. 위기에 빠진 한진해운을 부채의 바다에서 꺼내줄 것이라 믿었지만, 꿈에 그리던 ‘조양호 매직’은 일어나지 않았다.
5조600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부채를 이겨낼 요량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조양호 회장은 한진해운 인양을 위해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자리마저 내려놓았지만, 사재를 털어 기업을 구하겠냐는 언론의 물음엔 묵묵부답이다.

무엇보다 정석의 셋째 며느리인 최은영 전 회장과 손녀인 두 딸의 오너십 부재는 실망스럽다. 2013년~2014년 1조8000억원의 순손실을 낸 한진해운을 이끌었던 최 전 회장은 두 해 동안 보수와 퇴직금 등으로 97억원을 챙겼다.

최근 자율협약 신청이 결정되기 전 두 딸과 함께 보유 주식 전부인 66만9248주를 모두 팔아치운 점은 2000억원대 자산가의 돈을 향한 끝없는 욕심을 보는 듯해 씁쓸하기만 하다.

한진해운 모녀의 행동을 보면, ‘땅콩회항’으로 불리는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갑질이 겹쳐진다.
한진그룹의 ‘또다른 3세’ 조 전 부사장은 당시 위기를 모면하려 카메라 앞에선 고개를 숙이며 대국민 사과까지 했지만 진정성이 뒷받침 되지 못했다.

동생인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도 ‘무서운 세상 물정’을 몰랐다. 언니에게 보낸 “반드시 복수하겠어”라는 문자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막돼먹은 재벌 3세’를 향한 질타가 이어졌다. 대한항공이 직원들에게 거짓 진술을 강요하고 증거 인멸한 정황도 폭로되면서 대한항공의 이미지는 크게 실추됐고, 조 전 부사장은 구속 수감 됐다.

조 전 부사장은 항공보안법상 항공기항로변경죄, 항공기안전운항저해폭행죄, 형법상 강요죄로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고, 항소심에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대국민 사과까지 했으면서도 죗값을 다투는 모습에 국민들은 한진일가에 크게 분노했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대한항공은 ‘노사분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여섯 번에 걸친 노사 임금교섭은 불발로 끝났고, 그 와중에 조양호 회장이 한 조종사의 SNS에 남긴 댓글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노동자를 향한 한진일가의 그릇된 오너십을 극명히 보여준 사례다. 두 달 전, 대한항공 소속 김모 부기장이 페이스북을 통해 '여객기 조종사들은 비행전에 뭘 볼까요'라는 글을 올렸는데, 조양호 회장이 "조종사는 GO / NO GO만 결정하는데 힘들다고요 자동차 운전보다 더 쉬운 오토 파일럿으로 가는데. 개가 웃는다"라며 "아주 비상시에만 조종사가 필요하죠. 과시가 심하네요"라며 원색적인 댓글을 남긴 게 화근이 됐다. 이에 조종사 노조가 조 회장을 명예훼손 및 모욕죄로 고소하며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최근 한진그룹은 오너가의 장녀 조현숙씨를 정석기업 사내이사직에서 물러나게 하며 조양호 회장의 아들인 조원태 대한항공 총괄부사장의 3세 경영권 승계를 준비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지리한 공방전으로 노조의 신뢰마저 잃어버린다면, 포스트 조양호를 향한 승계작업은 노조의 반발로 브레이크가 걸릴 수 있다.

<>‘한진일가의 뿌리’ 정석의 말에서 해답이...

어느 기업이든 창업주의 말은 부풀려지기도 하고 덧대어지면서 곧 신화가 된다. ‘처음’으로 기업을 훌륭하게 일궈낸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고 위대한 일이기 때문일 거다.

만약, 피와 살로 묶인 ‘빼어난 사업가적 DNA’가 전문경영인 체제를 거부하고 세습 경영을 합리화 하는 가장 강력한 방패라면, 한진일가는 그 뿌리인 ‘정석’에게서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조중훈 한진 초대회장

정석의 어록은 그의 자서전, 회고록, 창업주 기념 웹페이지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사업은 감각이고 타이밍이다”

아무리 좋은 사업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안되고, 사업가들은 남들을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한다.

"신용은 평소에 쌓는 것이다"

처음에 얻지 못한 신용을 나중에 얻기는 힘들다. 돌이켜 생각하면 한진상사의 초기 사업이 순항한 이유는 어려움 속에서도 신용을 지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인 것 같다.

“기업이 곧 인간이며 중요한 것인 인화(人和)”

기업은 인간이 만들고 그 사람들로 구성되는 조직의 힘에 의해 육성되고 발전된다. 아무리 무능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위치가 있는 법이며, 그것을 알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지고 이기는 길"

사업을 함에 있어, 처음엔 지더라도 나중에 이기면 된다. 투자도 없이 이익만을 바라는 것은 사업이라기 보다 도박이나 투기에 가까운 것이다. 항상 이기기만 바라는 것 또한 겸손하지 못한 오만과 통한 것이다.

"사업은 예술"

기업인이 사람을 아끼며 바른 길을 걷는다면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또 기업인이 사회사업에 기여한다면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으리라.
이해득실만 따져 돈을 긁어모은다면 바른 기업이 될 수 없다. 사업적으로 이익이 되지 않더라도 더 큰 뜻을 위해 밀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예술가의 혼과 철학이 담긴 작품이 세월이 지날수록 가치를 더해가고, 경영자의 독창적 경륜을 바탕으로 발전한 기업만이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할 수 있다.

한진가 2~3세들은 지금 오너로서 기업을 어떻게 이끌고 있는가. 한진은 현재 국민들로부터 존경받고 박수를 받는 기업인가. 사리사욕에 갇히지 않는 예술 경영을 하고 있는지, ‘정석의 후예들’은 자문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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