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매케인이 남긴 교훈
존 매케인이 남긴 교훈
  • 유택열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8.30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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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모든 방송과 신문매체들이 전 아리조나 상원의원의 죽음에 경의를 표하며 애도하는 글들을 쏟아내고 추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정파를 따지지 않고 원칙과 소신에 바탕을 두고 행동했던 그의 일생은 인생의 파노라마 같은 대 서사시를 연출했다. 의회민주주의를 실행하는 나라는 올바른 정책과 나라의 갈길을 정하기 위해 대통령과 충돌하고 국민들과 부딛치기도 한다. 중요한것은 정치인들의 소신과 행동들이 국민들이 동조하는 애국정신으로 기본이 깔려 있어야한다. 정파의 이익을 따지는 무조건 반대나 개인의 포퓰리즘을 위해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우리의 현실을 각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1936년 해군 제독이었던 아버지를 둔 아들로 파나마의 해군기지에서 출생한다. 존 매케인(John McCain)은 1965 년 캐롤(Carol Shepp)과 결혼해 말레이지아에서 두 어린 아들을 입양했고 그 후 5명의 자녀를 낳아 7명의 아버지가 됐다.

 

고 존 매케인(John McCain)
고 존 매케인(John McCain)

 

갈림길에선 전쟁영웅 매케인

1967년 매케인이 베트남 전쟁에 자원하면서 그는 전쟁포로의 잔인하고도 극한상황을 신념으로 극복한 전쟁영웅이라는 신화를 만들었다.

그가 베트남 전쟁에 참가한지 불과 몇 달 후 월맹군의 폭격으로 지상포화의 총격을 받아 격추당했다. 당시 비상탈출을 시도하던중 두 팔과 다리 하나가 부러진 채 낙하산에 매달려 호수에 떨어지게 되었다. 북베트남군 병사들은 익사 위기에 몰린 매케인을 밖으로 끌어내서 어깨를 개머리판으로 때려치고 대검으로 발등을 찍어댔다. 결국 매케인은 북베트남군에 의해 진통제나 마취제도 없이 수술을 받았으나 조각난 팔 다리뼈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오랜 시간을 허둥대는 실수의 연발로 무릎 인대까지 절단됐다

이런 상태로 감옥에서 멀건 호박죽과 빵 조각으로 연명하던 매케인의 체중은 70㎏에서 45㎏까지 줄었고, 재활치료도 열악한 환경에서 혼자 스스로 해야만 했다. 특히 북베트남군에게 수많은 고문을 당하며 강제로 자백서를 강요받아 쓰기도했다. 이런 비인간적 대우를 받은 후, 매케인은 후유증으로 평생 한 쪽 다리를 절게 되었고 양팔을 머리 위로 올릴 수 없게 됐다.

메케인이 하노이힐턴이라고 불리는 포로 수용소에서 전쟁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 북베트남군은 당시 그의 아버지가 해군제독인 태평양사령관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미군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협상용으로 매케인에게 조기 석방을 제안했다. 그러나 매케인은 포로들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일이라며 "먼저 수용된 사람은 먼저 나가야 된다(First in First out)”라며 단칼에 포기했다. 3대째 미군인 그의 아버지 매케인 (John S. McCain, Jr.) 제독도 자신의 아들이 적을위한 협상용 도구가 되는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석방기회는 무산되었지만 매케인의 원칙과 소신있는 판단은 미국인의 애국정신의 모범사례가 되었다.

그 후 매케인은 하노이힐턴 수용소에서 5년 반 만에 풀려났다. 1973년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석방 당시 머리카락이 백발로 변했고 그가 입었던 부상은 남은 생애 동안 몸을 운신하는데 큰 악영향을 미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신체적 조건을 갖게된 매케인은 더 이상 군생활을 할 수 없게되자 어머니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하게된다.
 
매케인의 정치입문

1982년 매케인은 미하원의원에 당선되었고 1986년에는 애리조나의 상원의원 중 한 명인 배리 모리스 골드워터(Barry Morris Goldwater) 가 정계 은퇴하면서 그 지역구에 출마해 정계입문 4년만에 상원의원이 되었다. 1990년대 이후 베트남과 경제교류 및 여러 분야의 개방을 받아들인 미국 수뇌부와도 초기에는 충돌이 많았고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마지막에는 존 케리와 함께 베트남 내 실종미군과 유해를 찾는 일을 계속하며 베트남과의 관계 정상화를 주도했다. 1994년 베트남에 대한 수출제한을 해제하고 관계 회복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2000년대는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에 출마하여 상대방의 흑색선전과 자금난에 밀려 중도 포기했고 2008년 경선때는 젊은 뉴페이스 진보 오바마의 물결속에 공화당내의 어중간한 포지션으로 보수표도 잃고 중도표도 잃으며 완패했다.

그후 계속된 그의 대선행보는 도널드 트럼프와 경쟁에서 “포로로 잡힌 매케인은 영웅이 아니다”라는 트럼프의 일방적인 공격을 받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역시 미국인들에게는 가슴속에 새겨진 변하지 않는 전쟁영웅이었다.
정계입문 이후 그의 상식적 보수주의는 워싱턴 기성 주류 정치권과는 항상 충돌했다. 그런 이유로 공화당내에서 독불장군이나 이단아(매버릭)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트럼프의 극우 포퓰리즘에 가장 강력하게 맞선 그의 정치적 입장은 그를 공화당의 보수적 가치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각인시켰다
 
2016년 매케인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지명된 다음에 일단 지지를 선언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난해한 사고방식과의 충돌과 나중에는 미국 퇴역군인들의 마음을 자극하는 발언들 때문에 일부 퇴역군인들에 의해 서명한 트럼프 지지 철회 요청서를 받기도 했다.

실제로 공화당의 많은 지지자들이 지지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존 매케인이었기 때문에 만일 매케인이 트럼프 지지철회라도 하는 날이면 트럼프의 대선가도에는 사망선고가 내려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결국 그런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트럼프의 음담패설에 관한 녹취록이 공개되자 지지철회를 선언한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에게는 투표하지 않을 것이지만 도널드 트럼프에게도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기 소신을 당당히 밝혔다. 이것이 트럼프에게 어느정도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지만, 결국 트럼프가 클린턴을 이기고 당선됐다.

그의 성향은 원칙을 잘 지키는 보수로 미국기준으로 공화당내의 좌측에 위치했다. 그의 성격은 직설적인 면도 있지만 그러나 타인에 대한 깊은 배려가 그의 본성이라는 것이 미국인들의 가슴에 새겨졌다.

선거유세 중 한 젊은이가 "대통령 하기에는 너무 늙은사람 아니냐?" 라는 식으로 질문하자 매케인은 " 그런 질문을 해줘서 고맙다. 이 장난끼 많은 자식아!(Thanks for the question, you little jerk)"라고 대답했다. 또 젊은이는 "일하다가 늙어서 뒤지거나 치매 걸리면 어떡하냐?"식으로 무례하게 물어봤고, 매케인은 “하하, 재미있는 농담이구나!” 라며 웃음으로 대답하는 여유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또 어떤 부인은 “오바마는 검둥이 아랍인이고 종교는 모슬렘 아니냐?”고 묻자 그는 정색을하고 말을 가로 막으며 “아니에요, 부인! 그는 품위있고 가정적인 미국 시민이예요 (No, No, Ma'am, He is a decent American citizen). 나는 다만 그와 근본적 이슈들에 있어 의견이 다를 뿐입니다. 또 그게 바로 이번 선거운동의 핵심입니다.” 매케인의 이 말은 미네소타에 모인 다른 청중들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국제외교

레바논이나 소말리아에서의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등 국제외교에는 온건한 성향을 가졌으나 9.11 테러 이후에는 매파(Maverick)로 변했다. 그래도 아무 곳이나 쳐들어가겠다고 주장하는 네오콘들과는 달라서, 피해가 막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북한이나 이란 공습에는 반대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반대했다. 반면 중동에서의 미군 영향력 감소에는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며, 또한 이란의 경우 핵 협상 타결 이후에도 꾸준히 이란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냈다. 미국이 은근슬쩍 쿠르드족과의 관계에서 미적거리는 상황에서도 쿠르드족과의 신뢰 관계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기도 했다.

특이사항으로 공화당 출신임에도 고문에 매우 반대하며, 관타나모 등지에서 일어나는 전쟁포로 및 테러 용의자들에 대한 고문 및 인권침해 요소에 강력히 반대하는 진보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매케인은 하노이힐턴 수용소에서 5년 반 동안의 긴 포로 생활을 하는동안 직접 고문을 당했던 경험을 했기때문에 테러리스트와 같은 악(惡)을 상대하면서 미국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주장을 펼쳤다.

트럼프 대통령과 가장 크게 충돌하던 공화당 인사

2015년 1월 반전단체 "코드핑크" 소속 7-8명의 시위대는 키신저가 92세의 노구를 이끌고 미국의 군사정책과 관련한 증언을 위해 청문회장에 입장하는 순간 "키신저를 전범으로 체포하라"는 구호를 했다. 시위대는 키신저 전 장관이 과거 베트남 전쟁과 캄보디아 폭격, 동티모르 등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증인석으로 몰려가 '키신저는 전범'이라는 글귀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특히 시위대 가운데 한 명은 키신저 전 장관을 향해 수갑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청문회장이 소란스러워지자 매케인 위원장은 점잖게 "누가 의회 경비 좀 빨리 불러 달라"고 요구했고, 이어 의회 경비들이 등장해 시위대를 데리고 나가는 과정에서 "내가 이 상임위에 오랫동안 있었지만 이렇게 수치스럽고 비열한 시위는 처음"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여기서 당장 나가라, 몹쓸 인간쓰레기들'(low-life scum)"이라고 비난했다. 이 발언이 나온 순간 일부 방청객들은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2017년 5월 한국의 대통령 특사인 홍석현과의 면담에서 사드(THAAD) 유지비용은 미국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발언하으로서 한국측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침을 가했다.
말년에도 매케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가장 크게 충돌하는 공화당 인사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한국을 방문하려 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문대통령과의 회담에 대한 확답을 주지않아 화가 나서 방한을 취소했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매케인이 요청한 날짜에 문재인 대통령이 일정을 비우고 오찬을 하기로 했으나 매케인 측에서 당초 희망했던 날짜가 아닌 다른 날에 방문하길 요청해왔고 일정을 다시 조율하는 과정에서 매케인이 방문을 취소한것으로 밝혀졌다.

2017년 7월 25일, 뇌종양 수술 재활중인 몸을 이끌고 미 상원에 출석하여 오바마케어 폐지 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그리고 해당 법안은 49대 51로 부결되었다. 오바마케어 폐지를 노리던 트럼프 대통령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2017년 매케인이 애리조나 주 연방 상원의원(공화당)이자 미국 국회 상원 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중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금년 5월 5일, 뇌종양에 의한 부작용이 심화되기 시작했고 7월 말에는 뇌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이로 인해 그는 워싱턴 DC를 떠나 애리조나의 자택에서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게되었다.

2018년 4월 29일, 애리조나의 자택에서 그는 “자신의 장례식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대신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올 것과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정치를 떠나지 말 것”을 주문하는 유언을 남겼다.

2018년 8월 24일, 그의 가족들은 "그는 생존에 대한 기대치를 뛰어 넘었지만, 병의 진행과 노쇠해지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는 성명을 발표, 치료를 중단했다. 그리고 8월 25일  82세 생일을 겨우 4일 앞두고 세상을 등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서로 관계가 좋지 않았던 만큼 평소보다 대단히 짧은 문구로 매케인의 가족에게 애도의 의사만 표했을 뿐 고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등 고인의 업적을 기리는 다른 정치인들의 추모와 대조 된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마지못해 조의를 표했던  트럼프대통령은 백악관의 조기를 3일만에 정상적으로 내려. 국민들의 추모하는 마음을 외면할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2008년 매케인 의원과 대선에서 경쟁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우리들은 이념의 차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높은 것을 향하는 신의를 위해 미국인들과 이민자 세대들이 똑같이 싸우고, 전진하고, 희생하려 했던 이념들을 공유했다”며 “존 매케인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최선을 다해 보여줬다”고 애도했다.

틀리면 틀렸다고 몸소 실천했던 그의 투명한 목소리를 더는 들을 수 없다
그는 마지막 목소리를 이렇게 남겼다. “나는 자랑스러운 미국인으로 살았고 그렇게 죽었다!”(I lived and died a proud Ameri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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