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이외수의 비오는날 달맞이 꽃에게
[시평] 이외수의 비오는날 달맞이 꽃에게
  • by 윤화진 시인
  • 승인 2018.09.28 12: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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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화진 시인/ 경제학 박사
윤화진 시인/ 경제학 박사

 

이외수가 연예인 이상으로 매스컴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소박하고 간결한 문장력과 기인같은 외모는 독자나 일반인들의 시선을 끌기 충분하다. 그래서 그의 명성을 즐기고 광고 모델로서도 TV에 자주 등장한다.

여기서 광고주와 광고 기획사의 상업적 천박성을 말해 무엇하랴! 시인이 그렇게 팔려 다니는 예를 아직 보지 못했다. 시인의 시를 사 가야지 시인을 사 버리면 시가 나오지 않는다. 그는 원래 세상을 순박한 마음으로 노래하는 시인이다. 그의 시 하나를 여기서 자세히 들여다 보자.

비 오는 날 달맞이꽃에게

  • 이 외수

이 세상 슬픈 작별들은 모두
저문 강에 흐르는 물소리가 되더라
머리 풀고 흐느끼는
갈대밭이 되더라

해체되는 시간 저편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시어들은
무상한 실삼나무 숲이되어 자라 오르고
목 메이던 노래도 지금쯤
젖은 체로 떠돌다 바다에 닿았으리

작별 끝에 비로소 알게 되더라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노래가 되지 않고
더러는 회색 하늘에 머물러서
울음이 되더라
범람하는 울음이 되더라
내 영혼을 허물더라

이 시는 그의 최근 출간한 글쓰기 교본에서 시는 이렇게 쓰는 거라고 내 건 시 모형이다. 어떤 주제를 가지고 감성을 불어넣어 쓰면 이런 시가 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그 주제는 작별 또는 이별이다. 프로 시인다운 멋진 시다. 유려한 어휘, 능숙한 시적 기교, 작별을 경험한 톡자에게 감흥을 주고 흐르는 듯 써 내려간 이 시는 무엇을 탓 할 길이 없어 보인다. 스스로 성공한 작품으로 생각하는데 무슨 토를 달겠는가?

그런데 비 오는날 그 소박한 달맞이 꽃에 다가가 자신의 '쓰라린 작별'의 경험을 털어 놓고 위로를 받으려는 의도가 너무 바이론이나 괴테의 사랑의 시의 애송처럼 들리고 낯 간지럽다. 애틋하거나 소박한 이 외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더욱 "무엇 무엇 하더라"의 가상적 강조의 객관적 관용구가 진정성을 흐리게 하고, 멋 모르고 듣고 있는 달맞이 꽃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투다. '비 오는날 어느 인순이에게' 가 이 시의 제목으로 더 어울릴 것 같다. 유려한 어구 속에 숨어있는 전달 표현이 화려할 수록 진정성이 떨어진다.

이 외수의 작별이 '영혼을 허물' 정도의 절실함이 있었다면 진솔한 직설법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아니면
픽션(Fiction)이 내재 되 있고 독자를 의식한 문학적 (또는 상업적?) 시를 시도 했다면 듣기 좋은 시가되어, 시집도 팔리고 출판사도 좋아 할 것이고 뭘 나무랄 것인가?.

평자는 작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트랜스뢰뫼르의 시를 깊이 들여다 보고 평을 올렸는데 거기서 얻은 것이 '시란 적은 말로 큰 뜻을 전해야 한다. 그리고 진정성이 있어야 노벨문학상 반열에 들 수 있구나' 하고 시의 진수를 깨달았다. 이 외수의 노벨문학상 도전을 그려본다.

위의 이 외수 시는 행이나 절을 가지고 횡설 수설해서 득 될 것이 없겠다. 어느 비 오는 날 나도 달맞이 꽃에 다가가 나의 작별의 경험을 털어 놓고 위로를 받아야겠다. 그러면 혹시 이 외수 시의 평이 되거나, 한편으로 재미있는 비교문학이 될 것이다. 다만 끝으로 한 구절만 평을 더 한다면 2절 첫 행의 '해체되는 시간 저편으로' 는 달맞이 꽃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말 실수다. 달맞이 꽃이야 말로 해체된 시간 속에서 소박하게 '피어나고 또 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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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시인시인 2018-10-01 19:30:02
문학이란 굳이 평가를 통해 해석하는게 아니라 음악이나 그림처럼 예술 작품으로써 감상하며
마음에 품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감정이나 느낌은 누구나 다르기 마련이니까요.
비록 정당한 비판은 누구나 자유롭게 할 수 있다지만 윤화진 선생님의 시평은 이것이 문학작품이
아니므로 시적허용 표현기법도 쓰이지 못할진대 원색적인 비난이 느껴짐과 동시에 잘못된 맞춤법이 보여집니다.
띄어쓰기 정도는 저도 면목이 없는 바 이지만 본문에서 보여지는 '시를 깊이 드려다 보고' ,
'시의 진수를 깨달었다' , '위로를 받어야겠다' 라는 식의 맞춤법이 잘못된 문장은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장가도 사람인지라 실수를 한다지만 최소한 누구나 읽는 신문기사에서 만큼은 글을 조금 더 신중히 써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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