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GB금융지주와 대구은행이 대구은행장 선임을 둘러싸고 내분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지난 11일 DGB금융 이사회는 김태오 회장을 대구은행장으로 추천, 사실상 겸임이 결정됐다고 금융권 관계자들이 13일 전했다.
애초에 행장 후보로는 박명흠 전 대구은행장 대행과 노성석 전 DGB금융 부사장이 거론됐다.
그러나 이사회는 “은행에서 추천한 이들 두 사람을 포함, 6~8명의 후보를 심의했으나 채용비리와 비자금, 펀드 손실보전 등의 결격사유가 드러났다”며 김 회장을 선임한 이유를 설명했다.
박 전 대행의 경우 구속된 박인규 전 DGB금융 회장 겸 대구은행장에 대한 임금 지급 논란이 불거졌다. 또한 노 전 부사장은 수성구청 펀드손실 사건과 연루돼 있어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있으며, 다른 후보들도 박 전 회장 재임 당시의 각종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권 안팎에서는 김 회장의 겸직이 사실상 예정된 수순이었으며, 이는 핵심 계열사인 대구은행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 회장은 옛 보람은행에서 경력을 시작해 KEB하나은행과의 합병 후 지주사와 은행에서 요직을 지냈으며 하나HSBC생명 사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대구은행에서의 경력이 없는 외부인사다 보니 정권 교체의 수혜를 받은 낙하산이라는 비판이 김 회장에게는 따라다녔다. 회장으로서의 친정 체제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DGB 금융 내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대구은행 장악이 반드시 필요했다는 것.
DGB금융의 지난해 3분기 말 누적 당기순이익은 2786억 원이며 같은 기간 대구은행의 순이익은 2811억원으로 금융사를 넘어선다. 지난 2011년 DGB금융이 출범한 이후 1, 2대 회장 모두 은행장을 겸임해 왔기 때문에 김 회장 역시 겸직을 위한 사전 준비를 진행해 온 것으로 분석된다.
그는 대구은행과 DGB생명을 제외한 자회사에 대해서만 최고경영자(CEO)를 추천해 온 관행을 변경, 은행 이사회에 있던 행장 추천권을 지주사로 가져왔다. 이를 두고 은행 이사회와 노조는 겸임을 위한 포석이라며 비난했으나 김 회장은 회장과 행장을 분리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말로 맞섰다.
김 회장이 대구은행장 겸임을 결정하면서 일각에서는 현재의 갈등 상황을 대구은행 내 뿌리 깊은 대구상고(현 상원고)와 경북고 사이의 파벌 싸움으로 보고 있다.
대구은행에서는 지역 유력 학맥인 경북고와 대구상고 출신 인사들이 경쟁 구도를 이어 왔는데, 대구상고 출신인 박 전 회장이 물러나고 경북고 출신인 김 회장이 등장하면서 권력 다툼이 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수년간 DGB금융과 대구은행에서는 대구상고와 영남대 출신 인사들이 승승장구했으나 이들 중 9명이 지난해 7월 김 회장 취임 후 단행된 인사에서 퇴임했다. 지역 명문고로 불리는 대구상고는 한국은행 총재와 타 시중은행장을 배출했으며 1980년대까지 대구은행 신입 직원의 절반을 차지해 왔다.
다만 지금의 지주사 행보를 파벌 싸움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며, 지배구조 정상화를 위해 자연스럽게 거쳐야 할 과정이라는 반론도 있다. 대구은행은 DGB금융이 100% 지분을 보유한 완전 자회사인 만큼 지주사가 행장 추천권을 포기하는 게 오히려 책임경영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지적이다.
금융권 내에서는 지주사의 김 회장 추천을 은행 이사회가 거부하게 되면 ‘지배구조’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