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암호화폐 투자가 글로벌 스타트업 키운다 (3)
[연재] 암호화폐 투자가 글로벌 스타트업 키운다 (3)
  • 구태언 변호사(taeeon.koo@teknlaw.com)
  • 승인 2019.08.21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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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계는 지금 ‘현금 없는 사회’로 재편 중
(2)세계 금융시장의 새로운 기준, 암호화폐
(3)암호화폐 투자가 글로벌 스타트업 키운다
(4)미래금융의 핵심은 블록체인 기술이다
구태언 변호사/테크앤로 법률사무소 대표
구태언 변호사/테크앤로 법률사무소 대표

 

2014년 9월 검찰은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수사팀’을 발족하고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개최했다. 그런데 이 회의에 카카오톡과 네이버, 다음, 네이트 임원이 참석했다. 국내 주요 모바일 메신저 기업들이 정부의 사이버 검열에 동참할 것을 우려한 상당수 사람들이 카카오톡에서 텔레그램으로 ‘사이버 망명’을 선택했다. 
2013년 출시된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Telegram)은 강력한 암호화 기술로 모든 메시지를 보낸 사람과 받은 사람만 볼 수 있고 제3자 전달이 불가능하다. 서버를 독일에 두고 있어서 정부가 압수수색을 하더라도 대화 내용을 엿볼 수 없다. 특히 메시지 확인 기간을 지정하면 메시지가 자동으로 삭제되고 이후에는 서버에 기록이 남지 않는다. 텔레그램은 이 같은 강력한 보안성을 강점으로 전 세계 10억 명이 넘는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텔레그램은 보안성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최근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했다. 텔레그램은 2018년 1월 텔레그램오픈네트워크(TON)라는 블록체인 플랫폼과 자체 암호화폐인 ‘그램(GRAM)’을 개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블록체인 플랫폼 TON이 개발되면 텔레그램 사용자들은 메신저에서 암호화폐 그램을 이용해 결제나 송금을 할 수 있게 된다. 텔레그램은 이와 함께 암호화폐 공개를 단행했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투자를 받기 위해 주식이나 채권을 발행한다. 증시에 주식을 내놓고 주주들에게 투자금을 모으는 것을 ‘기업 공개(IPO, Initial Public Offering)’라고 한다. 텔레그램은 주식 대신 암호화폐를 발행했다. 주식 대신 암호화폐로 자금을 모집하는 행위를 ‘암호화폐 공개(ICO, Initial Coin Offering)’라고 한다. 기업이 높은 성과를 내서 주식이 오르면 투자자들이 이익을 얻는 것처럼, 암호화폐를 발행한 기업의 가치가 올라가면 암호화폐를 구입한 투자자들도 차익을 얻게 된다. 

텔레그램은 2018년 2월과 3월 두 차례 ICO를 통해 총 17억 달러(약 1조8343억 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2018년 1분기(1~3월)에 이뤄진 ICO 투자금은 63억 달러(6조7977억 원)에 이른다. 이는 같은 기간 미국에서 이뤄진 IPO 투자금 156억 달러(약 16조8324억 원)의 절반 수준이다. 앞으로 대다수 기업들이 주식이 아닌 암호화폐로 투자금을 유치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국내 규제 피해 해외로 망명하는 스타트업  

창업한 지 얼마 안 된 스타트업은 주식 상장을 통한 투자금 유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필요 자금을 확보하려면 벤처캐피탈 등에 기대거나 은행 대출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암호화폐 공개를 이용하면 비교적 손쉽게 거금을 투자받을 수 있다. 
블록체인 스타트업인 블록체인OS는 2017년 5월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ICO에 나섰다. 블록체인OS는 자체 개발한 국내 첫 암호화폐 보스코인(BOSCoin)으로 ICO를 진행한 결과 9분 만에 157억 원의 투자금을 끌어 모았다. 

또 다른 블록체인 스타트업 더루프(theloop)도 2017년 8월 자체 개발한 암호화폐 아이콘(ICON)으로 ICO를 진행해 233억 원을 투자받았다. 국내 1세대 블록체인 기업인 글로스퍼(Glosfer)도 자체적으로 만든 암호화폐인 하이콘(Hycon)을 통해 2017년 9월 국내 ICO를 진행한 결과 148억 원을 투자받았다. 하지만 이후 ICO로 투자금을 유치한 국내 스타트업의 사례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우리 정부가 ICO를 전면 금지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2017년 9월 1일 암호화폐 관계기관 합동TF를 열고 “암호화폐를 이용해 자금을 조달하는 모든 형태의 ICO 행위에 대해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처벌하겠다”고 발표했다. 2017년 12월에는 ICO 금지를 골자로 한 ‘유사수신행위 등 규제법(유사수신행위법)’ 개정안을 정부 입법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ICO를 금지한 나라는 우리나라와 중국 둘뿐이다. 그러나 중국은 정부가 경제정책을 통제하므로 사실상 시장경제를 채택한 나라 중 ICO를 금지한 곳은 우리뿐이다. 전 세계적으로 ICO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반면 유독 우리나라만 금지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ICO가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ICO를 하기 위해서는 암호화폐 발행 목적과 규모, 운용 계획을 담은 사업계획서(백서, White Paper)를 발행해야 한다. 투자자들은 백서에 적힌 사업 목적이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신뢰가 생기면 암호화폐를 구입해 투자를 하게 된다. 하지만 백서를 발행하는 기업들 대다수가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다 보니 전문적인 용어가 많아 전문가가 아니면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이를 악용해서 실체 없는 기술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거액의 투자금을 받아낸 뒤 자취를 감추는 이른바 ‘ICO 스캠(Scam·사기꾼)’이 늘고 있다. 수익률을 과장해 고수익을 미끼로 투자를 받는 다단계 사기 수법도 횡행하고 있다. 

암호화폐나 블록체인은 아직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사기 등의 부작용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막으려는 정부의 취지와 입장도 충분히 공감이 간다. 하지만 ICO를 악용한 불법 행위가 있다면 그들을 단속하고 처벌해야지, ICO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온당한 일이 못 된다. 이것은 마치 잡초가 많으니 논밭을 없애고, 부동산 투기가 심하니 부동산중개업을 없애고, 뾰루지가 났으니 발을 자르자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게다가 규제의 실익도 없다. 암호화폐는 국경을 넘나들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금지해도 다른 나라를 통해 우회해서 얼마든지 ICO를 진행할 수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 ICO를 진행했던 더루프는 정부의 ICO 금지 발표 직후 스위스에서 ICO를 진행해 1000억 원 규모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글로스퍼도 2018년 3월 글로벌 ICO를 진행해 총 5000만 달러(약 539억5000만 원)를 끌어 모았다. 
ICO를 위해 해외에 법인을 설립하는 스타트업들도 늘고 있다. 국내 게임 개발업체 리얼리티 리플렉션(Reality Reflection)은 2018년 1월 에스토니아에 법인을 세웠다. ICO를 통해 증강현실(AR) 게임 ‘모스랜드’에 투자를 받기 위해서다. 현재 30여개에 달하는 국내 암호화폐 관련 스타트업이 에스토니아에서 ICO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블록체인 기반 헬스케어 스타트업인 메디블록(MediBloc)은 2017년 11월 영국령 지브롤터에 법인을 세우고 ICO를 실시해 200억 원의 자금을 유치했다. 이외에도 스위스와 싱가포르 등 암호화폐 산업이 활발한 나라들에 국내 스타트업의 법인 설립이 잇따르고 있다. 
현재 ICO를 위해 해외로 나간 국내 기업은 100개 이상이며, 2019년 말까지 200 여개가 넘을 것 으로 추정된다. 국가마다 다르긴 하지만 해외에 법인을 설립하면 그 나라에서 모금한 자금의 20퍼센트 가량은 그 나라에 두고 와야 한다. 이로 인해 법인세와 인건비 등을 포함해 국외로 빠져나간 기회비용만 1000억 원에 이르고 있다. 

애매한 규제로 암호화폐 투자 범죄로 전락

이처럼 엄청난 국부유출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ICO 금지를 고집하며 내세운 명분은 투자자 보호다. 하지만 오히려 ICO 금지가 투자자 피해를 더 키우고 있다. 현재 정부는 ICO를 금지한다는 방침만 밝혔을 뿐 실제로 법 개정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법적으로 ICO는 합법과 다름없는 셈이다. 혹시 모를 규제를 우려해 대다수 기업들이 해외에 법인을 설립하고 글로벌 ICO를 진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상당수 기업들이 국내에서 ICO를 추진하고 있다. 다만 정부가 금지 방침을 밝힌 만큼 공개적으로 하지는 못하고 음지에서 ICO 설명회를 여는 형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투자자들은 진짜 ICO와 가짜 ICO를 구분하기 더 어려워졌다. 투자의 기본은 정확한 정보인데 대다수 ICO가 해외나 음지에서 이뤄지다 보니 사기꾼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최근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을 중심으로 가짜 ICO 판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ICO 금지 조치가 범죄를 더 쉽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해외에 법인을 설립한 스타트업도 정부의 애매한 태도 때문에 범죄자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해외에 법인을 설립하면 법인세와 인건비, 임대료, 법률 및 금융 서비스 사용료 등 상당한 자금을 그 나라에서 지출하게 된다. 이 같은 해외 투자는 외화 반출이 수반되기 때문에 외환 당국에 신고를 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이 정당한 신고와 허가 절차를 거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한국은행이 해외 ICO 목적을 밝힌 기업들에게 외환 송금을 허가했을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다. 만약 작정하고 과거 ICO 사례를 전수조사하면 상당수 기업들이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조세회피 혐의를 받게 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의 법인세는 22퍼센트인 반면 싱가포르는 7퍼센트에 불과하다. 우리 정부는 싱가포르를 조세회피처로 지정하고 있다. 만약 정부가 싱가포르에 법인을 설립한 이유를 ICO가 아닌 국내에서 발생할 매출을 해외로 빼돌리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하면 대다수 스타트업들이 조세회피 혐의를 받게 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해외에서 모금한 암호화폐는 법인 소유이기 때문에 그 돈으로는 한국에 세금을 납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한국에 있는 모회사의 세금 납부를 위해 해외 법인의 자금을 사용하면 업무상 횡령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 사기죄 적용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정상적인 사업계획이라고 해도 ICO 백서 내용 중 일부가 현실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투자자는 해당 스타트업을 사기죄로 고소할 수 있다. 기업의 의도와 다르게 암호화폐 거래 과정에서 다단계식 판매가 이뤄질 경우 유사수신이나 방문판매법 위반에 해당한다. 누군가 작정하고 빌미를 잡으면 얼마든지 현행법상 처벌받을 수 있는 것이 현재 ICO 스타트업이 처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산업의 활성화를 기대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 ICO를 진행했거나 준비 중인 기업의 대다수가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에 관한 신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 ICO를 사기와 같은 부정한 수단으로만 바라보고 규제만 고집해서는 결코 관련 산업이 성장할 수 없다. 눈앞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규제가 가장 손쉽고 빠른 방법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 뒤처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유가증권법을 적용해 ICO를 제도권으로 끌어당겼고, 유럽연합도 증권법으로 ICO를 통제하고 있다. 일본은 자금결제법을 개정해 13개 거래소를 합법적으로 운영하는 가장 전향적인 나라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산업의 발전과 성장을 바란다면 한시라도 빨리 ICO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서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규제가 이뤄져야 한다. 지금처럼 무조건 규제하고 방관하는 태도는 단기적으로 국부유출을, 장기적으로는 블록체인 후진국이라는 결과를 부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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