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거버넌스를 위한 새로운 로드맵 --- 슈퍼바이저에서 서포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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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태언 변호사(taeeon.koo@teknlaw.com)
  • 승인 2020.03.14 0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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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태언 변호사 / 법무법인 린 태크앤로
 
구태언 변호사 / 법무법인 린 태크앤로

 

IT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다 보니 본업 이외에도 여러 가지 직책을 맡곤 한다. 대부분 스타트업 자문이 주를 이루는데 간혹 정부부처 자문을 맡을 때가 있다. 행정안전부 산하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과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사회제도혁신위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이중 2017년 11월 발족한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과학기술, 산업경제, 사회제도 등 3개 혁신위원회로 구성됐다. 내가 속한 사회제도혁신위원회는 고용과 복지 등 사회혁신, 창의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혁신, 사회문제 해결, 법제도 정비, 국제협력, 지역연계 방안을 논의한다.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해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구성해서 법제도 개선 논의에 나선 것은 매우 환영할 일이다.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민관이 한자리에서 규제 개혁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누는 경험은 줄곧 규제 혁신을 외쳐온 1인으로써 몹시 가슴 뛰는 일이었다. 하지만 기대가 조금은 지나쳤던 걸까. 정부 주도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씁쓸한 기분을 지우기가 어렵다. 

전 세계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누구도 가보지 못한 신세계를 개척하기 위해 민간의 역량과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더 많은 시도와 도전이 이뤄지도록 규제를 최소화하고, 더 나은 답을 찾기 위해 민간의 경험과 지혜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아직도 ‘새마을운동’ 마인드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규제를 풀고 민간에 맡기면 당장 범죄가 난무할 것처럼 걱정하고 염려한다. 여전히 많은 공무원들이 자기 역할을 민간을 육성하고 계도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부는 플레이어도 아니고 감독도 아니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조력자일 뿐 주인공도 아니고 또 주인공이 되어서도 안 된다. 

역사상 가장 강한 개인의 시대가 온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표하는 새로운 시스템 가운데 공유경제와 블록체인이 있다. 공유경제는 시장 질서를 ‘독점과 경쟁’에서 ‘공유와 협동’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이다. 블록체인은 중앙의 통제에서 벗어나 개개인이 거래의 중심이 되는 탈(脫)중앙형 분산경제 시스템이다. 가까운 미래에 이 둘이 연결되면 지금의 국가와 기업 중심의 경제는 대대적인 변화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국가와 기업이 일방적으로 공급하면 국민과 고객이 군말 없이 소비하던 수동적인 경제 시스템은 더 이상 설자리가 없게 된다. 물건과 서비스와 금융 거래 데이터는 물론, 원하는 모든 것을 서로가 공유하고 보증하는 시대가 되면 국민 개개인이 수요자도 되고 공급자도 되는 분권형 사회가 펼쳐질 것이다. 

몇몇이 앞장서면 다수가 뒤를 쫓는 정부 주도의 경제가 아니라, 다수가 지혜를 모아 최선의 답을 찾아내는 경제 민주화가 가능해질 것이다. 모든 기술과 부가 대기업으로 쏠리는 규모의 경제가 아니라, 가장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기업만이 생존하고 성장하는 균형의 경제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사람 중심의 사회’ 정책과 철학적 측면에서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정부나 기업이나 제도처럼 잘 정리된 시스템이 국민을 대신해 사회를 움직였다. 하지만 앞으로 공유경제와 블록체인이 주류가 되면 국민 개개인은 자기만의 디지털 채널을 갖게 되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정책을 공급하는 동시에 소비하는 진정한 주권자가 될 것이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분권은 지금껏 정부가 독점해온 기능을 시민사회가 시단위 분단위 초단위로 분점하는 시대를 열 것이다. 기술의 진보가 인간을 소외시킬 것이란 우려가 많았지만, 실제로는 가장 강력한 인간의 시대를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먼 미래의 이상적인 이야기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주지하듯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일정한 조건만 갖춰지면 이 모든 변화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다. 스마트폰이 경제 주도권을 전통기업에서 혁신기업으로 바꾸고, 핀테크가 금융 주도권을 은행에서 개인으로 바꾸는데 불과 몇 년이 안 걸린 것처럼, 앞으로 등장할 새로운 혁신 기술들은 더 빠른 속도로 우리의 일상을 180도 바꿔버릴 것이다. 이미 현실로 다가온 공유경제와 블록체인은 그 시작이다. 

그런데 정부는 모든 것을 움켜쥐고 어느 것 하나 시민사회에 내주려 하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민간에 맡기는 대신 규제를 만들어 통제하고, 실수라도 할라치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불법 딱지를 붙이며 통제의 정당성을 되새김한다. 이미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것들도 법률이란 이름으로 애써 외면하며 기존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세계는 점차 디지털 분권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만 과거의 중앙 통제형 시대를 꼭 붙들고 안 놔주려고 한다. 

이제는 정부의 기능과 역할을 초기화 수준에서 다시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정부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고 이끌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시민사회와 함께 정책적 부작용을 최소화할 해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무조건 규제하고 통제하는 ‘슈퍼바이저’가 아니라 일단 지켜봐주고 일정 선에 이를 때까지 도와주는 ‘서포터’로 포지션을 재조정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기에 들어선 현재, 다양한 사회 변화가 일어나고 예측되고 있다. 법제도와 정책도 이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디지털     분권 시대에 발맞춰 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전면적으로 재논의해야 한다. 앞으로 정부의 든든한 파트너가 되어줄 시민사회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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