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교수 독후감] 화담 서경덕
[김혁교수 독후감] 화담 서경덕
  • By Kim Hyeok, Professor Emeritus at Sungkyunkwan U
  • 승인 2014.09.23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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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 나는 무식하게도 화담 서경덕선생을 황진이와 염문을 피우는 부자집의 잘나가면서 풍류있는 선비정도로 지레 짐작을 했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백팔십도로 내 지레 짐작이 어긋났음을 깨닫고 얼굴이 붉어졌다. 지조를 지키며 백성의 아픔을 한가슴 가득 안고 후학양성에 애 쓰신 참 선비의 모습을 마음속에서라도 엉뚱한 이미지로 덧칠한 어리석음을 깊이 뉘우친 것이다.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1. 화담의 생애

화담은 1489년(성종20년) 2월 17일 송도에서 당성 서씨의 3세손으로 태어났다.

당성 서씨는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할 때 남양서씨문중 사람들이 새 왕조에 조력하는 것을 분개한 화담의 증조부가 분적한 성씨로 당성은 남양의 옛 이름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화담의 집안은 살림이 매우 어려웠었다.

집안이 가난했기에 화담은 서당에 갈 수 없어 부친이 천자문부터 가르쳤으며 이후 홀로 소학까지 공부했다. 소학을 마쳤을 때 그의 나이 열셋이었다. 그가 한참 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있던 열 살 때 연산군의 무오사화가 일어났다. 선비들이 조정에 나가는 것에 대해 회의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화담이 열네 살이 되었을 때 황첨지로부터 서경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러나 황첨지의 실력이 시원찮아 화담의 의문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여 거의 혼자서 터득하는 방식으로 배움을 익혀간다. 이렇게 스스로 공부를 하던 중 대학의 ‘격물치지’란 글자에서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것의 중요함을 깨우치고 일로 정진해서 대학자의 기틀을 잡는다.

화담은 나이 19세일 때 혼인을 하여 가정을 이루었으나 사물의 이치를 캐내는 철저한 방식 때문에 몸이 아주 나빠진다. 화담의 모친이 권유하여 동생의 친구이며 선(仙)을 추구하던 전우치와 여행을 떠난다. 평양을 거쳐 묘향산에서 백발의 노인인 도사를 만나 가르침을 받는다. 도사는 화담이 쓸데없이 뇌를 많이 쓰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 건강한 몸에서 맑은 기운이 생긴다는 자연의 이치를 일깨운다. 그리고 우주의 기(氣)에 대해 알려주고 기를 축적하는 공부를 시킨다. 사람이 밥만 먹고 기를 먹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는 것이며 기를 먹어야 천지의 기를 다스릴 줄 아는 진정한 사람인 진인(眞人)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진인은 인체의 정과 기와 신을 단련하여 하나로 뭉쳐지는 사람을 말한다. 이렇게 묘향산에서 백일동안 몸과 마음의 수련을 한 결과 집착과 불안에서 벗어나 무아의 경지에 이르는 진리를 터득한다. 도인은 조선에는 세가지 삼이 있음을 알려준다. 하나는 산삼, 둘은 물에서 나는 해삼, 마지막은 비삼(飛蔘)으로 까마귀이다.

사람들은 겉이 검고 목소리가 아름답지 못하다 하여 까마귀를 천대하지만 까마귀는 죽음을 미리 아는 영조임을 일깨운다. 사람도 겉으로는 못 나 보이는 사람이 실제는 비삼과 같은 진인일 수 있다는 지혜도 함께 얻는다.

반년간의 유람으로 건강을 회복한 후 집으로 돌아온 화담은 본격적으로 ‘주역’공부를 시작한다. ‘역’은 삼라만상의 변화 뒷면에 숨은 불변의 법칙을 밝히려는 철학이었다. 이렇게 공부를 하던 중 아들을 낳는다. 결혼 후 3년만이었다. 그의 나이 스물다섯 되던 해에 마침내 화담은 역을 통한 삼라만상의 조화를 꿰뚫게 되었다. 역의 이치를 터득하기 시작한지 삼년 만에 삼라만상과 천지의 운행법칙, 사람의 도리, 사상과 실천도덕의 조화를 꿰뚫었던 것이다. 또한 하늘의 기운을 받아들여 천지와 기를 소통할 수 있게 되었으며, 만물과도 기를 소통시킬 수 있었다.

 

그 당시 화담은 ‘복재’라는 호를 쓰고 있었는데 한양에 사는 모재 김안국, 기재 신광한과 함께 선비로서 교류를 하였다. 김안국은 김굉필의 제자로 그의 문하에서 조광조 등과 함께 공부한 수재였다. 화담보다 열한 살이 많았다. 신광한은 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신숙주의 손자로 화담보다 네 살 위였다. 김안국과 신광한은 화담이 조정에 출사하기를 바라 조정에 천거를 하는가 하면 이에 응하지 않자 과거시험이라도 치르도록 종용했지만 화담은 한사코 벼슬길에 드는 것을 거부하였다.

화담은 부친이 별세하자 삼년의 시묘살이를 한 후 오관산의 꽃골짝(화곡)으로 들어가 초가를 지어 본격적으로 후학양성에 나선다. 초가집 앞의 작은 꽃 연못을 ‘화담’이라 부르는 데서 화담이 서경덕의 호가 된다.

이후 화담은 죽기까지 이 초가에서 머무르며 많은 후학을 가르치는데 제자 중에는 ‘토정비결’로 유명한 이지함과 그 유명한 기생 황진이도 포함된다. 황진이와의 염문설은 소문으로 퍼졌으나 실제로는 스승과 제자의 사이였다고 이 소설의 저자는 밝힌다. 화담은 1546년 58세를 일기로 이 세상을 하직한다. 이지함과 황진이가 죽는 순간까지 곁을 지킨다.

 

2. 화담의 생각들

중종 때 조광조가 개혁정치를 급하게 펼치면서 어려움이 닥치던 시기에 화담은 개혁정치가 어려워 질 것을 내다본다. 정치란 힘과 욕(慾)의 균형으로 음과 양도 균형이 맞을 때 생성의 매듭을 이루는데 그 당시의 조정은 매듭을 지을 새도 없이 균형의 정점을 넘어 선 것으로 진단한다. 김안국의 천거에 대한 답을 위해 주역의 괘를 뽑아보니 천지비(否)가 나왔다. 비(否)는 소인이 날뛰어 군자가 모함을 받는 괘라고 해석하여 자신은 벼슬길에 오르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김안국에게 은인자중할 것을 밝힌다. 이후 조광조 등이 죽임을 당하는 기묘사화가 일어난다.

화담은 ‘참전계경’을 읽고 인간세상을 참으로 아름답게 만드는 이치를 터득한다. 참전계경에는 인간세상의 으뜸 되는 여덟가지 이치를 ‘성(誠), 신(信), 애(愛), 제(濟), 화(禍), 복(福), 보(報), 응(應)’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원리는 인간을 둘러싼 모든 환경에서 시작과 끝이라는 시간이 없는 영원불변의 세계인 무극의 세계에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다는 비밀이었다. 정성이 쌓여 믿음이 되고 믿음이 쌓여 사랑이 되고 사랑이 쌓여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로 구체화되어 간다는 식이다. 또한 불경스런 말로 하늘을 더럽히면 안되는 것도 말한다. 하늘의 도를 아는 사람은 하늘을 능멸하지 않으며, 하늘의 이치를 아는 사람은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 법이라는 것이다.

화담은 제자에게 자연을 관찰하므로써 서책의 자구에 얽매이지 않고 이치를 깨닫도록 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를테면 산책의 길목에서 녹음이 다르고 시냇가의 물소리가 다르고 물이 머무르지 않고 흐르는 것을 보았다면 이는 세상의 만물이 모두 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식이다. 더 나아가 물이 멈추지 않고 흐르는 것에서 물의 근원과 아래로 흐르는 성격, 대해로 향하는 길을 유추하는 것을 내다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화담은 지리산에 올라 두류도인을 만나 ‘정역’에 대해 듣는다. 만물은 음양이 조화로울 때 비로소 만족과 행복을 깨닫게 된다. 빈부가 균등하고 남녀가 평등하며 아끼고 사랑하는 세상이 온다는 것이 정역의 시대라는 것이다. 무극인 하늘과 황극인 땅과 태극인 사람이 합일하여 인간과 천지, 우주가 일치하는 이상세계,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개벽사상을 말한다. 이 정역을 행동으로 나타낼 수 있는데 영가와 무도(舞蹈)이다. 영가란 ‘궁상각치우’ 오음을 자연의 기로 흡입하고 이 다섯가지 소리를 ‘음아어이우’로 하여 아랫배에 힘을 주면서 묵직하고 힘차게 똑똑한 소리로 연달아 부르는 것이었다. 이렇게 대자연의 기를 불러 오장육부에서 소리를 내다보면 법열의 삼매경에 빠져 자기도 모르게 추는 춤이 무요, 흥에 넘쳐 어쩔 줄 몰라 뛰는 것이 도다. 무도는 형식이 따로 없이 전후좌우로 고갯질을 하며 자연스럽게 팔을 내두르며 뛰는 것이다.

화담은 성리학에서 말하는 성즉리라는 논리에서 이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기일원론을 주장한다. 기속에 이가 존재하는 것이며 이를 별도로 구분하여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선악과 도덕적 순수와 생과 사가 모두 기의 작용으로 ‘자기 스스로 그러하다(自能爾也)는 뜻이라는 것이다. 또한 불교에서 사람의 생명이 적멸한다는 것도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멸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기가 변하여 사물이 되었다가 다시 기로 돌아간다는 것을 주장한다.

 

3. 좋은 글귀들

· 모름지기 사람은 풍류를 알아야 한다. 풍류를 모른다면 종이꽃 같은 인생을 살다 가는 것이다. 제대로 된 풍류를 알기 위해서는 음률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예악에 둔감한 사람은 기감이 없는 것이니 영가를 배울 수 없다.

· 지리산 전체를 몸으로 비유하면 섬진강은 영락없이 큰 입이었다.

· 태극무는 몸에 흐르는 기를 원활하게 하고 기를 기르는 동작으로서 삼태극의 원리에 따른 움직임으로 다른 말로는 선무라고 한다. 삼태극이란 성(性)과 명(命)과 정(精)을 뜻하니 성은 마음의 의지에서 나오고, 명은 기에 의지해서 유지하며, 정은 몸을 유지하는 것이다.

· 무릇 대기(大器)는 혼자 이루는 것이 아니다. 큰 그릇이란 여러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 물은 산수의 피요, 돌은 산수의 뼈, 그래서 그것이 어울릴 때 산수간(山水間)의 음양이 조화를 이룬다.

· 색깔이란 빛으로 모이면 흰색이 되지만 사물에 모이면 검은 색이 된다. 그러나 우리가 검정 옷을 입게 된 것은 공민왕 때의 풍수설 때문이었다. 풍수로 우리나라의 지세를 수근목간(水根木幹)이라 한다. 여기서 근이란 부모, 간이란 나의 몸을 말하는데 오행으로 볼 때 물이 나무를 생하여 주듯이 수는 검정색이고 목은 청색이니 옷을 입는 풍속도 이를 따라 검정 옷을 입은 것이다.

· 죽음이란 혼백이 나누어진 것뿐이었다. 육신인 백은 땅속 깊숙이 묻혀 흙으로 돌아가지만 혼은 대기에 머물며 가족들과 소통하는 것이다.

· 된장의 오덕이다. 아무리 다른 맛과 섞이더라도 제 맛을 지켜나가는 단심의 도, 오래도록 상하지 않는 항심의 도, 비리고 기름진 냄새를 제거해주는 불심의 도, 매운 맛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선심의 도, 그리고 어떤 음식과도 잘 조화되는 화심의 도가 그것이다.

·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은 끊임없이 소식(消息)하고 영허(盈虛)한다. 소식이란 낮과 밤의 길이, 계절에 따라 음과 양의 양이 달라지는 것이다. 영허는 달처럼 찼다가 기울어지는 이치를 말하는 것으로 변화를 의미한다.

· 절기는 절로 왔다가 스스로 물러나는 순리에 어긋나는 법이 없다.

· 명예가 덕을 따르는 것은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다.

· 공부라는 것은 닭이 알을 품는 것과 같네. 닭이 알을 품고 있지만 뭐 그리 따뜻하겠는가. 허나 늘 품고 있기 때문에 알이 부화되는 것이네. 급하다 하여 끓는 물로 알을 뜨겁게 한다면 알은 죽고 말 것이며, 지루하다 하여 품는 것을 잠시라도 멈춘다면 그 역시 깨어나지 못한다네. 어디 공부뿐이겠는가. 세상을 사는 것도 다 같은 이치라네.

· 황진이는 타고난 기질이 강하고 재예가 차고 넘치지만 여인으로 태어나 기생이 되었으며 그 기질을 다 풀어낼 수 없으니 그것이 한으로 맺히고 업으로 굳어 저리도 심화를 안고 사는 것 아니겠는가. 누군가 벗 삼아 이따금은 품어주고, 이따금은 틔워주고, 이따금은 질책하여 바르게 제 길을 갈 수 있게 조력해야 하니 그 또한 공부나 다름없는 일일세.

· 출생년도가 확실치 않은 벽계수란 사람이 있었다. 효령대군(세종의 둘째 형)의 증손으로 연산군의 갑자사화때 살해되었다. 그때는 황진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이었다.

· 청산은 영원히 변함없는 자연을 뜻하고 벽계수는 물처럼 흐르되, 끊임없이 변해가는 삶을 표현한 것이다.

· 지족선사는 망덕보시를 베푼게야. 애욕과 애증과 애탐의 늪에서 벗어나게 하는 보시말이야. 선사께서는 진작에 버리신 일을 자네만 끌어안고 평생을 자학하며 살 셈인가. 이제 그만 끊고 거듭나야 하네.

· 언제까지 성근 그물로 바람을 잡을텐가. 소문이란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헤아리는 것 같아 짐작하기 어려운 법, 세월이 지나면 그저 바람에 불과한 걸세.

· 동지는 묵은 것이 아니라 새롭게 태어나는 날이자 달이었다.

· 인간의 만남이란 스스로 왔다가 스스로 떠다는 것이었다. 죽음도 그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승에서의 죽음은 저승에서는 탄생이 되는 것이었다.

· 태허의 맑고 형체가 없는 것, 이를 선천(先天)이라 한다. 그 크기는 한이 없고 그에 앞서는 아무런 시작도 없으며 그 유래는 추궁할 수도 없다. 그 맑게 비고 고요한 것이 기의 근원이다.

· 한이 없는 것을 태허라 하고 시작이 없는 것을 기라한다. 또한 기는 끝도 없다. 이(理)는 기의 주재자이다. 주재자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며 주재자로서 그 기의 작용을 지시하여 바르게 저절로 그렇게 될 근거를 잃지 않게 하기 때문에 그것을 주재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기는 본래 무시(無始)한 것이니, 이도 본래 무시한 것이다.

· 태는 비어있으면서도 비어있지 아니하니 허는 곧 기이기 때문이다. 허는 끝도 없고 가(外)도 없는데 기 역시 끝도 없고 가도 없다. 이미 허라고 말했는데 어찌 그것을 기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텅 비고 고요함이 기의 본체이며, 모이고 흩어짐이 그 작용이기 때문이다. 허가 비어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으니 그것을 무라고 말할 수 없다.

· 까마귀는 새끼를 낳고 나면 점점 눈이 약해져 마침내 앞을 볼 수 없게 되지. 그때부터 새끼 까마귀는 어미가 죽을 때까지 먹이를 물어다 주며 돌보기에 반포조(反哺鳥)라고 한다네.

· 풀은 자연과 호흡하는 가장 기초적인 생물이라네. 풀은 그 어떤 생물보다도 먼저 땅을 딛고 하늘을 본 생물이지. 그렇기 때문에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라네.

· 바둑판은 역학의 도구였네. 역학은 복희씨 때 황하에서 용마가 등에 지고 나왔다는 55개의 점인 하도와 하나라 우임금이 낙서에서 거북의 등에 있었다는 45개의 점을 가지고 선천역과 후천역을 만들었다고 하네. 하도와 낙서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 홍범구주라고 전해지네. 홍범구주는 홍범과 구주가 합쳐진 말로 홍범은 거북의 등에 있었다는 아홉 장의 문장을 이르는 것이고 구주는 천하를 다스리는 아홉가지 대법이지. 구주를 아홉가지의 궁을 만들어 바둑판에 배치하게 되었다네. 또한 역학의 팔괘를 구궁에서 가운데 궁을 제외한 팔궁에 배치하였던 것이다.

· 바둑판의 사방 19줄은 하도의 10수와 낙서의 9수를 합한 수이고, 사방 19줄의 수를 모두 합하면 72수인 것이니 이는 72후(候)를 상징한다네. 뿐만 아니라 바둑판의 가운데 점인 천원에서 상하와 좌우로 나누면 열십자가 생겨 음양의 양의 사상이 이루어진다네.

· 주인과 객과 바둑판으로 천지인의 삼재를 갖추고 네모진 모형에서 사상(四象)을, 구궁에서 팔괘와 팔문을 세워 삼라만상이 상생하고 상극하는 무궁한 변화를 궁구하는 것이라네.

· 가로세로 19줄의 361점은 인체의 360혈을 나타내며, 천지의 운행도수를 참고하여 만든 일년 360일에 윤도수 하나를 합한 361점으로 구성되고, 원형의 360도를 나타내며, 북극성을 중심으로 천체가 원형을 그리며 돌 듯 가운데 천원을 두는 등 무한한 대자연의 법칙과 우주의 원리를 함축하고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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