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의 독후감] '여자란 무엇인가'
[김혁의 독후감] '여자란 무엇인가'
  • 이경호(lkh@koreaittimes.com)
  • 승인 2015.05.07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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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김용옥)가 고려대학교 교수로서 1985년 자신이 맡고 있던 인문학 강좌의 토요특강 시리즈의 마지막 강좌 내용을 토대로 후일 보충해 낸 책이다. 발간일이 1989년이니 지금부터 26여 년 전에 쓴 책이지만 동양과 서양사상의 근본적인 뿌리를 보여주는 면에서 가치가 있다고 보아 이 주제를 본다.

1. 사람에 대한 동양과 서양 사상의 차이

사람을 뜻하는 말은 서양은 맨(man)을 쓰고 동양은 인(人)을 쓴다. 서양의 맨은 사람을 뜻하지만 동시에 남자의 뜻이 있는데 여자는 맨에 ‘우’를 붙여 우맨(woman)으로 부른다. 동양의 인이라는 말은 남자와 여자의 구분 없이 사람을 뜻한다. 단순한 말 하나에도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가 들어 남을 알 수 있다.

동양은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는데 반해 서양은 남자 위주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은 어떤 속성이 결여되어 있는 덕에 여성이라고 했으며 토마스 아퀴나스도 여자를 불완전한 남자라 하였다. 이처럼 여성을 제 2의 성으로 인식하 는 원천은 「구약」 ‘창세기’에서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사람인 아담을 진흙으로 창조하셨는데 아담은 남자요, 이후 여자는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뽑아 만드신 것으로 말한다.

남자 중심의 가부장제적 권력구조를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동양에서 사람을 뜻하는 (人)을라는 책은 ‘사람이라는 것은 하늘과 땅의 힘이 합쳐진 것이며, 음과 양의 기운이 교합한 것이며, 형체와 신령의 만남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하늘과 땅을 이루는 다섯 운행의 가장 빼어난 기를 타고난 것이다’라고 말한다.

하늘과 땅 자체가 여성성과 남성성의 상징으로 이해되고 인간은 바로 이러한 여성성과 남성성의 결합체로서 이해되고 있다. 여자를 뜻하는 여(女)와 모(母)의 갑골문 형상은 여자가 아이를 낳는 해산의 모습을 상형한 것이다. 중국 고대사회에서 여성의 인식이 여성이 갖고 있는 생산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한편 남자를 뜻하는 지아비 부(父)자는 갑골문에서 ‘도끼’를 뜻하며, 이는 세속적인 힘, 권력, 지배, 정벌등과 관련되어 나타난다.

동양과 서양의 사람에 대한 이처럼 다른 인식은 서로 다른 생활환경에서 비롯되고있다. 유목민족인 서양은 ‘하늘’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가 발달하고 농경민족인 동양은 ‘땅’을 숭배하는 문화가 발달했다. 여기서 하늘은 남성성의 상징이고 땅은 여성성의 상징이다.

인류 문명사에서 한자 문명권에서 독립적으로 성립한 특수한 종교양태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고등종교가 중동지역의 사막에서 나왔다. 유목민족에 있어서 사막이란 삶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는 하지만 결코 삶의 궁극적 에너지의 근원이 아니다.

사막은 그들에게 곡식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막의 모든 현상은 덧없고 그림자와 같아서 인간 의식의 항상적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사막에 사는 사람들은 땅과 관련된 모든 것은 가짜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사막은 죄악과 죽음과 어둠의 상징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막 문명권에서는 땅의 숭배가 발달하지 않는다. 또한 유목민족에게는 그들의 양식을 제공하는 동물, 양떼와 이 양떼를 먹이와 물이있는 곳으로 인도하는 목자가 중요하게 된다. 목자는 양떼 위에 군림하는 초월자이며 이 초월자는 양떼에게 법칙을 주는 입법자이다.

양떼에 대한 목자라는 초월자는 유목민족의 하늘숭배와 직결되며 이러한 초월적 하느님의 숭배는 그들에게 매우 법칙적이고 추상적 사유를 낳게한 것이다. 이에 반해 농경민족의 양식인 식물은 땅에 뿌리를 박고 있으며, 땅의 자연의 논리에 의해 성장할 뿐 간섭하고 지배하는 논리를 거부한다.

농경사회에서는 지혜가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지 않고 부락사람들 모두에게 골고루 분포되어 지혜의 개별화 현상이 일어난다. 농경민족에게는 양떼를 지켜주는 목자도 필요없게 된다. 식물과 인간은 모두 천지자연의 거대한 생명체의 유기적 일부로서 이해될 뿐이며, 식물에게 농부가 법칙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식물은 식물 나름대로의 내재적 법칙성을 가지게 된다.

농경민족에게 하늘과 땅은 내재적 전체로 이해되어 이원적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하늘 없이 땅이 성립할 수 없으며, 땅 없이 하늘이 성립할 수 없다. 비가 없는데서 농사를 지을 수 없으며, 땅 없이 하늘의 비가 생겨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농경문화에서 하늘성(남성성)과 땅의성(여성성)이 상보적 관계를 이루는 것으로 인식된다.

주역은 이러한 상보관계를 음양으로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중국사상 중에서 노자는 양에 대한 음의 우위를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노자는 여성성을 좋아한데 반해 공자는 남성성을 좋아한 사람이다. 노자는 유(柔)하고 약(弱)한것이 강한것을 이긴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농민에게 있어 일차적으로 소중한 것은 땅이요 따님이다. 땅이야 말로 그들의 생명이며 사랑이다. 하늘은 땅에 생명을 주는 그 무엇으로서만, 즉 땅과의 관계에서만 소중한 것이며 흙처럼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땅에 직접 의존하지 않고 사는 귀족들이나 도시사람들에게는 땅 보다는 하늘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민이라는 하부구조를 딛고 서있는 그들의 권력기반이 피폐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대 중국에서도 하느님 숭배가 귀족과 도시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유교가 이러한 귀족계급과 도시생활을 기반으로 발흥한 것이라는 학계의 주장이 있다.

2. 글귀들

‘아마데우스’에서 그리고 있는 모짜르트라는 천재를 천재답게 만들고 있는 천재성은 자기의 살아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출할 수 있는 용기다. 그 표출에는 모든 전통성과 형식성이 무기력하게 붕괴된다.

귀한 자리는 서로 귀하게 키워갈 때만 귀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모든 고대 종교는 조상숭배, 즉 우리 생활주변에서 쉽게 발견되는 제사와 관련이 있으며, 이 제사는 모든 종교의식의 원초적 전법을 이루는 것이다.

남자는 머리에 베일을 덮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남자는 하나님의 모습이며, 하나님의 영광의 거울인데 반해, 여자는 남자의 영광을 드러낼 뿐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여자를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며 여자야말로 남자를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들은 하나님의 사자들이 무서워서라도 그 머리위에 그들을 초월하는 권위의 상징으로서 항상 베일을 덮고 다니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니라 (고린도전서 11장 7- 9)

아담의 창조로부터 프로이드의 카스트레이숀에 내려오기까지 서구문화의 가장 고질적 특징 중의 하나는 모든 사물을 동양인처럼 관계로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로서 파악하는데 있다. 남성의 생식기를 생식이라는 작용의 관계로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나의 실체로 파악했기 때문에, 결국 여성의 생식기를 그 실체의 결여로서 밖에는 볼 수 없게 된다. 이것은 정말 명백한 오류다.

‘식자우환’이라는 우리의 말은 매우 경박한 속언에 불과한 것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는 노장철학 넓게는 도가철학의 성구이다. 그것은 인간문화에 대한 부정정신을 나타내며 우리 인식의 바탕을 이루는 언어구조의 허구성을 나타내며 인간존재의 본질적 다양성을 함장하고 있는 말이다. 프로이드라는 ‘식(識)’은 우리를 해방시키고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식이 우리에게 우환(anxiety)을 가져다준다.

인간의 종교현상이란 것은 인간의 총체적 경험의 현상이며, 합리와 비합리의 칸막이를 쳐놓고 그 한 구석에 쑤셔 집어넣을 수 있는 그 따위 물건이 아니다.

종묘와 사직은 경복궁이라는 정치질서를 지탱하는 두개의 정신질서이다. 종묘는 역대왕의 신주를 모신 당실의 사당으로서 남성인데 반해 사직은 땅과 곡식신을 상징하며 여성이다.

사(社)라는 것은 땅(土)을 예배하는 것이며, 음기를 주로 하는 것이다.

성당은 문자 그대로 성스러운 당이다. 교회란 가르침을 받으러 모이는 곳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솟터’인 것이다. 즉 십자탑과 같이 뾰족한 어떠한 물체를 오리엔테이션으로하여 창출한 성(聖)의 공간이며 그 밖의 속(俗)의 공간과 구분되는 그러한 의미의 장이다.

성당이나 교회로 들어가는 문은 성과 속의 공간이 엇갈리는 통로이며, 분화의 경계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천주교인들이 성당을 들어 갈 때면 문간에 있는 물로 손을 축여 십자가를 긋게 되는 행위는 속의 공간에서 성의 공간으로 진입하는 일종의 통과의식이다.

모든 예배에 있어서 우리는 반드시 음과 양의 양면을 갖추어 추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은나라 사람들은 양적인 측면에서 구하는 것을 강조하였고, 주나라 사람들은 음적인 측면에서 구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술을 먹는 이유는 간단하다. 술이란 추상적 정의를 내리자면 일상적 궤도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한다.

천지자연이 유기적 리듬을 가지고 있듯이 인간이라는 유기체도 리듬을 가진다. 인간은 이성적 질서로부터 어떠한 비이성적 해방을 추구하게 된다. 농경문화에 있어서 이러한 해방의 최초의 문명적 산물은 바로 술이었다. 술이야말로 인간의 이성적 질서를 무너뜨린다.

견우는 남성으로 소와 같이 농경의 힘, 즉 노동을 상징하며, 그의 계절은 봄과 여름이다. 직녀는 여성으로 길쌈을 상징하며, 그녀의 계절은 가을과 겨울이다. 그래서 음양오행론에서는 춘하를 양으로 보고 추동을 음으로 보게 된다. 칠월칠석이란 바로 음과 양의 만남이다.

야훼하나님은 음이 없는 양의 하나님, 홀애비 하나님이다. 이 사유에서 인간창조에 있어서 여자를 제외시키는 오류를 범했으며, 신부와 수녀라는 독신성이 성립한다. 중국의 하느님 즉 음과 양의 유기체적 우주관에서는 독신성이 성립할 근거가 없다. 우주자체가 음양의 화합체이기 때문이다.

by 칼럼니스트 김혁 교수

 

* 본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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