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게시물, 삭제가 답일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게시물, 삭제가 답일까?
  • By 김미례 기자 (info@koreaittimes.com)
  • 승인 2016.05.04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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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ixabay.com

지금으로부터 1년 6개월 전 크로아티아 출신 유명 피아니스트 데얀 라지치(Dejan Lazic)는 워싱턴포스트에 메일을 보냈다. 2010년 12월 그의 첫 워싱턴DC 무대를 다룬 워싱턴포스트의 음악기자 앤 미지트의 기사를 온라인에서 삭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불꽃은 튀었지만 불길은 타오르지 않았다(Sparks but no flame)'란 제목으로 공연에 대한 실망감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이 기사를 라지치는 ‘악의적’이라며 자신의 이미지가 실추됐다고 주장했다.

라지치가 삭제 요청의 근거로 삼은 것은 2014년 5월 유럽연합 사법재판소(ECJ)가 구글을 비롯한 검색 엔진에서 특정인에 관한 정확하지 않거나 과도한 인신공격 등을 포함한 부적절한 정보를 발견할 경우, 당사자는 이에 대한 삭제를 요청할 권리가 있다는 판결이었다.

이에 워싱턴포스트는 언론의 ‘표현의 자유’를 들어 라지치의 요청을 거절했다. '라지치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예술가는 물론이고 정치인과 공무원들도 자신의 의견에 따라 상시로 기사 삭제를 요구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이 사건은 결국 워싱턴포스트의 반박기사로 일단락됐지만 이후로도 '잊힐 권리'에 대한 논란은 계속돼 왔다. 우리나라 역시 내달 시행되는 '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 요청권 가이드라인'으로 이해관계자의 첨예한 의견 대립이 예상된다.

이번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회원 탈퇴 등으로 직접 삭제가 어려운 경우, 본인이 쓴 게시물에 대해 다른 사람의 접근배제 조치를 게시판 관리자에게 요청할 수 있다. 게시판 관리자가 사이트 관리 중단 등으로 조치를 취할 수 없다면 이용자는 검색서비스 사업자에게 이를 요청할 수 있다.

'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 요청권 가이드라인'에 대한 쟁점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가 훼손될 수 있으며 나아가 검열의 명분이 될 위험이 있다는 지적.

둘째 사용자 본인이 올린 게시물에 대해서만 잊힐 권리를 보장할 뿐 타인이 올린 게시물 때문에 발생한 피해를 구제하는 방안은 담고 있지 않아 ‘반쪽짜리’ 가이드라인이라는 비난이다.

마지막으로 외국 인터넷 사업자는 이 가이드라인의 적용을 받지 않아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잊힐 권리와 알 권리의 균형... ‘필요 최소한’ 범위로 운영돼야

인터넷에 남아 있는 기록은 때에 따라 추억도 되지만 족쇄가 되기도 한다. 과거의 흔적이나 과오가 현재의 삶을 위협한다는 것은 무척 괴로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모든 게시물을 본인 요청만으로 삭제한다는 건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무한 확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또 다른 무책임과 불신을 양산할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

특히 자본의 힘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이들이 혹은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 잊힐 권리를 악용해 과거의 불리한 사건들을 은폐하고 미화하는 데 악용할 소지가 다분해 보인다.

따라서 자기 게시물에 대한 관리권을 상실한 이용자를 효과적으로 구제하면서도 앞서 언급된 소비자의 알 권리나 언론 보도의 자유 등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가이드라인의 범위를 ‘필요 최소한’으로 제한해야 한다.

또한 자기 게시물에 대한 권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현재의 가이드라인에서는 제3자의 게시물에 의한 피해는 여전히 존속될 것으로 보인다. 타인의 게시물에 대한 권리와의 균형도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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