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산금융의 이해: 이상한 세계
분산금융의 이해: 이상한 세계
  • 글 김형중 논설위원 (khj@koreaittimes.com)
  • 승인 2021.02.05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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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중 논설위원/고려대 특임교수/암호화폐연구센터장
김형중 논설위원 (암호화폐연구센터 센터장,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특임교수)

 

금융의 생명은 신뢰성과 유동성이다. 금융기관들은 고객들이 맡긴 예금이 안전하게 관리된다는 믿음을 끊임없이 각인시켜야 한다. 이 믿음이 신뢰성의 기반이다. 은행에 예치한 돈을 고객이 출금하고 싶다면 금융기관은 언제라도 돌려줄 수 있어야 한다. 즉, 유동성이 풍부해야 한다. 유동성이 풍부해야 신뢰성이 높아진다. 

돌아보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은행들이 한둘이 아니다. 2008년 세계 4위의 투자은행이었던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가 파산했다. 기네스북은 이 파산을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산으로 기록했다. 역설적이지만 중요한 은행일수록 파산하기가 쉽지 않다. 소위 대마불사(too big to fail)라는 격언이 적용된다. 파산하도록 그냥 두면 세계 경제 질서가 한 방에 무너질까 싶어 구제금융으로 살려놓은 대형 은행들이 부지기수이다. 역사적으로 금융시장은 이처럼 늘 불안정했고 별로 안전하지 않았다.

고객들이 믿고 맡겼던 자금을 빼고자 할 때 즉시 돌려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깨지는 순간 은행은 걷잡을 수 없는 예금인출(bank run)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은행은 이자수익을 노리고 예치된 예금 대부분을 대출해 주기 때문에 은행 보유잔고가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서 은행들은 예금인출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파산을 모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동분서주하며 위험한 고비를 수없이 넘겼다. 대형 금융기관의 신뢰는 그렇게 쌓였다. 

고객들에게 안전하다는 굳건한 믿음을 주기 위해 은행들은 정부의 면허를 취득한다. 은행이 파산하더라도 한국의 예금보험공사는 고객 한 명당 최고 5,000만 원 한도 내에서 예금을 보전해준다. 정부의 면허를 받으려면 전국 시중은행은 최소 1,000억 원의 자본금을 준비해야 한다. 지방은행은 적어도 200억 원이 필요하다. 인터넷전문은행은 250억 원의 자본금을 모아야 한다. 정부의 면허를 받으려면 매우 까다로운 다른 요건들까지 다 만족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의 면허도 없고 경험도 전혀 없는 젊은이들이 백서(white paper)를 발행하고 순식간에 수천억 원의 자산을 모아 금융 영업을 영위하는 분산금융 서비스가 매일 몇 개씩 새로 출현하고 몇 개가 사라진다. 자산이 송두리째 날아갈 수 있음에도 분산금융기관에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을 맡기는 사람들이 있다. 보수적인 사람들 눈에는 한없이 이상한 이런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2018년 ‘유니스왑’(Uniswap)이라는 분산금융 플랫폼이 출현했는데 2021년 1월 16일 현재 시점에서 고객이 예치한 자산(TVL)이 무려 31억 달러에 이른다. 언제 쓰러질지도 모르는 분산금융 플랫폼에 거액의 자산을 예치하게 만드는 아주 중요한 요인이 있다. 소중한 자산을 맡겨도 원금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믿음이 그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을 과감히 ‘유니스왑’ 플랫폼에 예치한다. 

또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고객이 맡긴 기초자산을 동결하고 대신 스마트 컨트랙트가 대체자산을 주조하는 게 유행이다. 고객이 기초자산(underlying assets)인 ‘비트코인’ ‘BTC’를 맡기면 대체자산인 ‘wBTC’가 만들어지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주조된 ‘wBTC’는 ‘이더리움’ 플랫폼에서 분산금융 서비스에 쓰인다. 대체자산이 반환되면 스마트 컨트랙트에 의해 대체자산은 즉시 소각되고 고객은 맡겼던 기초자산을 돌려받는다. 그래서 고객의 기초자산은 안전하게 관리된다. 떼일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고객이 이유 없이 ‘비트코인’을 분산금융 플랫폼에 맡길 리 없다. 고객의 자산을 유치하기 위해 분산금융 프로토콜은 고객에게 이자를 준다. 한 푼의 자본도 없이 출발한 플랫폼이니 이자를 현금으로 줄 형편이 아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쓸모가 없어 보이는 디지털 자산이 이자로 지급된다. 예를 들면, ‘유니스왑’은 자체적으로 주조한 ‘유니’(uni)라는 디지털 코인으로 이자를 준다. 이 코인은 가치가 전혀 없는 숫자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런데 ‘유니’가 2021년 1월 30일 기준으로 15.40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이자로 ‘유니’를 받는 게 은행에 예금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을 수 있다.

‘비트코인’을 오래 가지고 있어 봤자 이자가 한 푼도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분산금융 플랫폼에 맡기면 이자가 생긴다. ‘유니’의 가치가 제로라면 ‘비트코인을’ 맡기고 받는 이자도 제로이니 고객이 ‘비트코인’을 그냥 잠가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유니’의 가치가 제로가 아니면 제대로 된 이자를 받으니 고객에게는 기쁜 일이다. 그러니 원금은 보장되고 이자까지 받을 수도 있어서 분산금융 플랫폼에 ‘비트코인’을 예치하는 것은 밑져야 본전이 아니라 수지맞는 일이다.

영특한 젊은이들이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비트코인’을 맡기고 이자를 받는 이자농사(yield farming) 마당에 뛰어들었다. 이자는 연리 수백 퍼센트에 달하는 프로젝트도 있었으니 이자농사를 외면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자농사가 고객의 신뢰를 얻었고 분산금융 플랫폼에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자산이 쌓이자 유동성이 풍부해졌다. 며칠 사이에 뚝딱 분산금융 은행 하나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다. 

2020년 8월 장종찬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개발자가 ‘와이언 파이낸스(yearn.finance)’의 프로토콜에서 하드포크한 ‘아스카 파이낸스(asuka.finance)’를 만들면서 이 바닥의 허망함을 실증한 사건이 벌어졌다. ‘아스카 파이낸스’는 ‘아스카’ 토큰을 10,150개만 발행할 예정이며 첫 주에 5,150개를 주조하겠다고 공표했다. 이 프로젝트가 공개되자 불과 10시간 만에 무려 835만 달러에 상당하는 ‘다이(dai)’라는 토큰이 예치되었고, ‘아스카’ 토큰 가격은 무려 1,600달러까지 치솟았다. 무가치한 토큰이라고 공지했음에도 폭포수처럼 자산이 몰려들자 겁에 질린 장종찬은 황급히 사이트를 폐쇄했고 토큰 가격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이 황당한 프로젝트는 불과 3일 만에 종료되었다. 그렇지만 고객이 입은 피해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면 예탁 자산의 98%를 ‘다이’로, 나머지 2%는 ‘아스카’ 토큰으로 구성하도록 했다. 고객이 맡긴 자산인 ‘다이’는 안전하게 고객에게 돌아갔다. ‘아스카’ 토큰 가격이 0에 수렴하기 전에 되팔았다면 고객은 나머지 2%의 손해도 보지 않는다. 장종찬은 자신이 유사수신 등 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며 황급히 웹에 해명 글을 올렸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전개될 분산금융은 이전의 전통적인 금융에서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다가오고 있다. 무담보 무위험 초단기 대출인 플래시론(flash loan) 같은 것은 분산금융에서만 가능한 새로운 서비스 모델이다. 분산금융에는 플래시론 같은 서비스가 많다. 젊은이들의 허망한 짓거리로 치부하기에는 분산금융은 정말 신박하고 멋진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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