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한국의 건강한 삶을 이루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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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orea IT Times
  • 승인 2022.09.19 12:08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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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더 외국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더 한국적으로 돌아가는것이 가족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

필자: 이만열(임마누엘페스트라이쉬)

가족 중심의 새로운 유교적 가치체계 구축

이만열(임마누엘페스트라이쉬) / 아시아인스티튜트 이사장, 전 경희대 교수

한국은 오늘날 세계를 휩쓸 문화와 기술과 비전에 어두운 그림자가 압도적으로 직면해 있다. 아시아의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할 강력한 대한한국이 되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가족의 붕괴를 막는 도전에 직접적으로 맞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즉 가족 및 인간의 기본 가치의 부패에 대한 근본 원인을 직접 다루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은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해체되고, 건강한 사회적 행동과 가족의 가치가 멈추게 되는 순간에 있다. 이 위기에 대한 해결책은 한국 사회와 문화의 혁명적 변화, 한국 사회의 일상 생활의 기초가 되는 기본 가치의 변화에서만 찾을 수 있다. 

즉, 우리는 한국의 가정을 구하고, 한국이 진정한 세계적 리더가 될 수 있도록 한국 문화를 최대한 살리려면 작고 상징적인 행동에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의 가치가 얼마나 많이 잘못되었는지를 인식하고 한국의 경제적, 기술적, 문화적 성공에 대한 어리석은 자부심을 갖는 것을 멈춰야 한다. 

혁명적 변화의 개념
혁명적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직접 다루어야 하는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위기를 극복하면서 혁명적 변화의 개념이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지 않도록 확실히 하기 위해 혁명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첫째, 혁명은 현 시대에 우리가 전기 자동차를 타고 스마트 도시로 여행하는 것처럼 미래의 기술적 낙원을 향한 전진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경우에 혁명적인 것은 과거의 대한민국 전통을 돌아보고 그것을 포용하는 용기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한국상을 현대 한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문화적 정체성의 조각들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현대 한국을 특징짓는 기술, 자본 또는 재화의 축적보다 더 가치가 있는 훨씬 더 큰 건강한 사회를 위한 핵심 요소를 제시하는 것으로 보는 관점을 의미한다.

건강한 사회를 원한다면 자동화, 디지털화, 감시 카메라, 스마트폰 중독, 그리고 어린 아이들을 조종하기 위한 AI의 사용을 거부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혁명은 사회를 지배하는 가정의 근본적인 변화, 인간의 행동을 규제하는 원칙의 변화, 그리고 정책 결정 과정을 알리는 정부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경우 혁명은 가족 간의 사랑과 의무의 유대가 성공적인 사회를 위한 토대가 되는 그 어떤 물질적 소유물보다 개인적인 가치가 더 중요한 한국의 전통을 재발견하는 것을 포함한다. 혁명은 성장, 소비, 일상생활에서의 기술 사용과 같은 성공을 재단하는 잘못된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혁명이라는 용어는 좌파 또는 우파의 의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비록 극단주의자들, 즉 좌파와 우파 모두의 관심과 영향력을 추구하는 정치인들이 혁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호소력을 끌어올리고 자신들의 입장을 극단적 입장에 끌리지 않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러한 정치인들은 실제 혁명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들만이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기적의 해결책을 제안하는 데만 관심을 둔다. 그들은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제품을 팔고 있다.

오늘날 한국에 필요한 혁명은 20세기 초부터 한국을 지배해 온 강력한 진보-성장-현대화 이념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며, 1961년 이후 한국의 고도성장에 대한 스트레스로 절정에 달한 현대화의 이념이다. 한국 사회와 성공의 모든 측면은 소비와 생산을 기준으로 한 숫자로 계측된다. 우리는 소비와 생산이 아닌 가족과 이웃을 존중하는 인간의 가치가 건강한 사회의 핵심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는 것은 정부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개인과 기업의 모든 행동에서 주요 목표가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언론과 정부는 불행하게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자동화와 인터넷 상에서 인간 활동의 이동, 감시의 증가, 경제 활동에 대한 수출입 의존도, 에너지 소비, 그리고 가족적 가치, 충성심의 신뢰가 아닌 낭비, 자아도취, 방종을 장려하는 엔터테인먼트 문화의 창조를 찬양한다.

간단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한국 정치에서 받아들여지는 교조와 비교해 보면 분명히 혁명적인 말들이다. 생산과 유통의 과정에서 인간을 제거하는 4차 산업혁명을 추진하고, 아이들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AI를 통해 교육을 받게 하거나, 무분별한 충동을 조장하고, 친구나 가족과의 의미 있는 교류를 저해하는 온라인 엔터테인먼트를 청소년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국가 정책이 되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깊은 도덕적 의무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고 가족을 위한 걱정 없이 소비하고 즐기는 것을 목표 삼아야 한다고 느낀다. 그것은 나이든 부모나 어린 아이들을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으로 자신들의 변덕과 사적인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는 세대를 만들어낸다.

흔히 이러한 가치관의 붕괴를 한국 사회에서 급진적인 개인주의라고 부른다. 필자는 개인주의라는 용어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위기의 진정한 기원을 모호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위기는 알게 모르게 진행되는 광고 캠페인으로 인한 행동의 장기적인 조장의 결과이며, 유아기부터 아이들에게 방출되어 개인의 필요와 욕구에 대한 집중, 어떻게 인식되는지에 대한 집착, 그리고 상품과 서비스의 소비를 통한 타인의 관심을 위한 경쟁을 장려한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들이 우리에게 강요한 잘못된 이데올로기는 한국문화의 본질을 상당 부분 파괴하여 현재의 가족적 부패까지 이어지게 했다.
다시 말하면, 전통적인 한국 사회는 인간 경험의 보이지 않는 영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 반면, 현재의 경향성은 눈에 보이고, 흥미롭고, 자극적이거나, 제3자에 의해 가치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주변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힐 때 개인의 미덕이라는 것은 난감한 환경이 되었다.

한국의 전통적 가치
우리는 한국의 5천 년 역사에서 배울 것이 많지만, 그 핵심은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들이 재작업한 한복 드레스, 랩과 결합된 한국 판소리, 또는 현대 콘크리트 건축과 융합된 한옥 건축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 문화의 핵심은 눈에 보이지 않고, 움직일 수 없고, 종종 관념적인 것이다. 한국 전통의 최대 강점은 가치이며, 이는 본질적으로 보이지 않고, 오직 행위를 통해 표현된다. 한국의 핵심은 전통적으로 성장, 제조, 소유,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덕,선,충,효(徳, 善, 忠, 孝)였다. 지나치게 가족에 대한 충성심이 한국 문화의 문제도 된 적이 있다. 하지만 가족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현대적이고, 독립적이 되고자 하는 열망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인간 활동의 기반이자 국가의 기초가 되는 가족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가족으로부터의 이탈이 한국에 가져온 결과는 파괴적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계속 건강한 사회나 의미 있는 삶과 관련이 없는 성장, 소비, 수출, 기술 발전 등 비과학적인 지표로 성공을 평가하고 있다. 만약 경쟁, 자아도취, 이기심, 그리고 낭비가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의 비전은 이전에 한국에 존재했던 것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 현대의 성과와 진보성을 이루겠다는 맹목적 집착은 한국의 가장 위대한 보물들을 파괴시켰다. 여성들은 미디어에서 성적 대상으로 취급되고 심지어 어린 소녀들도 선정적인 옷을 입도록 부추겨지고 있다.

한국 문화의 핵심은 효도다. 즉 그 누구보다도 부모에 대한 깊은 존경과 보살핌으로, 이는 전통 사회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친 철학이다. 비록 한국인들이 오늘날 효도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부모를 잘 보살피는 것보다 새 차와 좋은 집을 갖는 것,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더 중요시한다. 효도에 대한 찬사는 사람들이 그들이 살고 있는 자기도취 문화를 포기하도록 강요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하다. 사람들은 그들의 부모를 좋은 요양원에 모실 수 있도록 돈을 더 많이 벌려고 하거나 심지어 부모에 대한 책임에 대해 생각할 필요 없이 만나는 것조차 피하려고 하기도 한다.

극소수만이 스스로 부모를 보살펴야 한다고 느끼고, 부모 말씀을 주의 깊게 듣는데 시간을 쓴다.  효는 부모, 조부모, 돌아가신 조상들을 보살피고 존경할 것을 요구했다. 부모와 조부모가 자녀와 손주들에게 깊이 헌신했다는 가정하에 그렇게 한 것이다. 가족에 대한 헌신은 기본적으로 교육적이나 도덕적이다. 자녀, 또는 부모에게 돈을 제공하는 것은 효도의 핵심이 아니다.

효도 전통을 따르면, 자녀는 부모와의 소통을 통해 좋은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울 것으로 기대되었다. 부모에 대한 존경, 염려, 사랑은 한 사람이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모범을 구성했다. 효도에는 오늘날 큰 가치를 지닌 다른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 그것은 개인의 정체성을 명확히 해주는 전통이었다. 개인은 가족 내에서 깊이와 역사를 가진 전통의 일부였고, 개인에게 가난이나 전쟁이 없앨 수 없는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 개인은 가족의 산물이었고 그 연결고리는 깊은 도덕적 힘을 주었다. 가족없이 가정 없이 개인이
존재 하지않는다는 전제로 하는 효도 정신은 현대 한국에 꼭 필요하다.

효도는 산물이 아니었다. 효도는 소비되거나 판매되거나 거래될 수 없었다. 금융 경제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효도는 본래 유교적이었던 도덕경제의 바탕이 되었다. 유교적 윤리는, 특히 효도가 고취하는 관계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시장과 상품화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자행된 그 전통의 상실은 한국에 큰 피해를 입혔다. 효도를 현대 한국 사회에 재도입하면 자아도취적인 문화로 야기된 가족의 쇠락과 해체를 감소시키는 가정내 지원적인 관계를 만들어 선한 영향력이 제공될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 사회의 심오한 변화를 필요로 할 것이다. 가족에게 효도하는 것, 사회에 기여하는 도덕적인 개인으로서 봉사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돈을 벌고 소비하는 것이 더 낮은 가치이며 심지어 도덕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함을 의미할 것이다. 그것이 유교 사회의 근본 이치다. 다시말해, 잔인 한 방법으로 돈을 번 다음에 부보님을 모시는 것은 효가 아니다. 처음부터 가정을 돈보다 중시 하는 한국의 위대 한 습관을 회복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한국 사회의 변화, 그리고 전통적 가치로의 복귀는 작금의 소외와 노인들의 외로움, 그리고 젊은이들의 소외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지만, 그러려면 화폐 경제의 기능이 극히 제한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유교는 한국에 몇 가지 중요한 문화적 요소를 제공하는 보수적인 전통이지만, 퇴보적이고 현대 사회를 만드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관점은 유교와 효의 근본적 특성을 간과하고 있다. 둘 다 시장 경제와 금융 주도의 가치 판단 시스템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를 더 인간적으로 만들고, 아이들을 양육하기 쉽게 하고, 독거 빈곤 노인이 생기지 않게 하는 방법은 유교 사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 사회의 가치와 성공이 경제 성장에 의해 측정될 수 있다는 사고를 거부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유교 경제학은 향후 단기 및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술 및 경제 변화의 영향을 살펴볼 것을 요구했다. 이렇게 경제 성장과 기술 변화를 살펴보면 스마트폰, 메타버스, AI 등 현재 도입되고 있는 혁신 대부분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부정적인 영향이 크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유교 경제학은 검소하게 살고, 소비를 줄이고, 가족과 이웃에게 효도하며, 순수하고 정직한 사람들을 초점을 뒀다. 즉, 기본적인 도덕 계율(관습)을 따르는 것이 사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고 정부의 역할은 도덕적 행동을 장려하는 것이었다. 현대 사회에는 윤리적인 것에 대해 사람들에게 보상하려는 노력이 일절 없으며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도덕 훈련을 위한 시간은 감소했다.

TV 프로그램, 광고, 뉴스 보도에서 홍보되는 내용은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하기보다는 자신의 욕구를 탐닉하고, 물질적인 목표를 획득하고,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는 것이 가장 높은 가치라는 것이다. 지난 100년 동안 도덕적인 문제를 경제보다 부차적으로 만든 것은 19세기 서구 경제 발전에서 비롯된 열등감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슬프게도, 도덕 사회의 기본에 대한 배신이었다. 진정한 전통적인 유교적 가치로 돌아가는 것이 오늘날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엄청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한국은 더 외국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더 한국적으로 변모함으로써 가족의 쇠락에 대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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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2-09-19 21:03:09
세계종교인 가톨릭의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절대적 초월자이십니다.
@ 공자님의 시호. 하늘이 보내신 성자이신 성인 임금 공자님은 황제 칭호인 문선제(文宣帝).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圣文宣王)의 오랜 전통으로 호칭되어 오고 있습니다.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은나라 왕족의 후손이신 공자님. 참고로 하면, 공자님 아버지 시호는 계성왕(啓聖王)이시고 공자님 어머니 시호는 계성왕 부인(啓聖王夫人)이십니다.
http://blog.daum.net/macmaca/3127

http://blog.daum.net/macmaca/733

http://blog.daum.net/macmaca/2967

윤진한 2022-09-19 21:01:39
일본점쇠賤民.후발천황(점쇠가 돌쇠賤民.불교Monkey서울대 전신 경성제대설립)옹립.한국은 세계종교유교국.수천년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숭배.해방후 조선성명복구령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복귀.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세계종교 유교국중 하나인 한국이 불교Monkey 일본의 강점기를 겪으며 대중언론등에서 유교가 많이 왜곡되고 있음.http://blog.daum.net/macmaca/3131@Royal성균관대(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교육기관 성균관승계,한국 最古.最高대).Royal서강대(세계사반영,교황윤허,성대다음예우)는 일류,명문.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항거해온 패전국奴隸.賤民불교Monkey서울대.주권,자격,학벌없는 서울대.추종세력 지속청산! @동아시아 세계종교인 유교나, 서유럽의 세

윤진한 2022-09-19 21:00:02
피어난 신흥종교인 원불교등도 주권없음.

주권없는 패전국잔재 奴隸.賤民이자, 하느님.창조신을 부정하는 Chimpanzee계열 불교일본서울대Monkey와 추종세력들이 학교교육 세계사의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윤리의 종교교육 유교, 국사등과 달리, 일본강점기때 일본이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 했으니까, 유교가 종교아니라고 최근 다시 왜곡하는데,이는 일제잔재 대중언론에 포진하여 루머수준으로 유교에 도전하는것임.한국은 미군정때,조선성명복구령으로 전국민이 조선국교 유교의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하는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임은 변치않으며 5,000만이 유교도임.@인도에서 불교도는,불가촉賤民.조계종승려賤民한국과비슷.강점기 하느님에 덤비며(창조신내리까는 부처처럼)유교부정,불교Monkey일본.하느님보다높다는 성씨없는

윤진한 2022-09-19 20:59:27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
http://blog.daum.net/macmaca/3057

@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고종황제 후손인 황사손(이 원)임.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현재는 5,000만 유교도의 여러 단체가 있는데 최고 교육기구는 성균관대이며,문중별 종친회가 있고, 성균관도 석전대제로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임.@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주권없음. 강점기에 피어

윤진한 2022-09-19 20:58:20
@한국은 세계사의 정설로,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국으로 수천년 이어진 나라임. 불교는 고구려 소수림왕때 외래종교 형태로 단순 포교되어, 줄곧 정규교육기관도 없이, 주변부 일부 신앙으로 이어지며 유교 밑에서 도교.불교가 혼합되어 이어짐. 단군신화는 고려 후기 중 일연이 국가에서 편찬한 정사인 삼국사기(유교사관)를 모방하여, 개인적으로 불교설화 형식으로 창작한 야사라는게 정설입니다.

유교,공자.은,주시대始原유교때 하느님.조상신숭배.세계사로보면 한나라때 공자님도제사,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성립,수천년전승.한국은殷후손 기자조선 기준왕의 서씨,한씨사용,三韓유교祭天의식. 국사에서 고려는 치국의道유교,수신의道불교.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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